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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밥상 가득 퍼 담은 어머니의 내리사랑 2020년 10월호
 
밥상 가득 퍼 담은 어머니의 내리사랑

 

구순의 오영숙 할머니는 평생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이 오 남매의 끼니를 챙겼다. 삼시세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은 그렇게 자식들의 피와 살이 되었다.

밥상에는 갖가지 찬이 올랐지만 으뜸은 김치였다.

오이소박이, 나박김치 등 철마다 제철김치를 내었고, 매년 200포기나 되는 김장김치를 담갔다.

해마다 김장하는 날이면 보쌈을 삶고 겉절이를 버무려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매일 아침 다섯 아이 도시락을 싸는 게 일이었지요. 유리병에 볶음김치를 싸주곤 했는데 우리 집 김치가 맛있다고 소문이 났나 봐요. ‘혜남이 김치 싸왔다!’ 하며 친구들이 달려들어서 정작 자기는 잘 먹지 못했다고 셋째가 하소연을 할 때가 많았지요.”

모든 게 풍족하지 않던 그때 그 시절, 오영숙 할머니(90)는 김치 덕분에 찬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볶아도 먹고, 끓여도 먹고, 부쳐도 먹으며 사시사철 가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김치. 매년 200포기나 되는 김장김치를 담그는 일이 고되긴 했지만 마음만은 항상 든든했다.

“지금은 절인 배추를 사서 쓰기 때문에 수고를 좀 덜었어요. 아이들도 다 커서 자기 가정을 꾸린 지 오래지만 여전히 김치는 많이 담가요. 각자 집에 나눠줘야 하거든요.”

 

해마다 김장날이 되면 온가족이 총출동하며 잔칫날을 방불케 한다. 한몫 거드느라 힘을 쓴 가족들이 김장날 빼놓을 수 없는 별미인 보쌈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풍경이다. 그녀의 보쌈 비법은 커피가루와 월계수 잎.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커피가루와 월계수 잎으로 잡는다. 된장 푼 물에 커피가루와 월계수 잎을 넣고 푹 삶아 담백한 보쌈에 새우젓, 멸치액젓, 다진 마늘, 고춧가루, 매실청 등의 각종 양념을 넣고 버무린 배추겉절이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그녀는 김장김치 뿐 아니라 철마다 오이소박이, 나박김치 등을 내놓는 김치장인이기도 하다. 특히 나박김치는 가족들 모두가 엄지를 치켜드는 집안의 자랑거리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놀러 왔는데 찐 고구마와 나박김치 한통을 다 먹고 간 적이 있었어요. 저는 어머니가 담근 나박김치보다 맛있는 걸 먹어본 적이 없어요.”

 

셋째 딸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나박김치는 오늘도 어김없이 손님상에 올랐다. 여기에 직접 담근 정월 장으로 끊인 된장찌개와 짭짤하게  맛이 든 소고기 장조림까지 더한 정갈한 한 끼는 식객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70여 년 전에 시집와 한평생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진 내공이 차려진 음식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 오랜 시간 반복해 손에 익은 솜씨는 쉽사리 희미해지지 않는 법. 고령의 나이에 이제는 부엌살림을 놓은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간 보기며 마무리는 그녀의 몫이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와 행복

 

“생각해보니 나라는 건 없었어요. 언제나 아이들이 우선이었죠. 다섯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흘렀어요."

 

22세의 나이에 경기도 이천에서 서울로 시집온 처자는 매우 어렵게 엄마가 되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귀한 첫딸을 얻은 건 결혼 3년 만인 25살 때. 하지만 출산의 기쁨도 잠시, 삼칠일에 외손녀를 보기 위해 다녀가신 친정엄마가 4일 만에 갑작스레 돌아가셔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멍울을 남겼다.

“어머니를 잃은 슬픈 와중에도 내 아이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장례를 치르면서도 품 안에 안고 있는 아이가 찬바람 맞아 탈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안절부절이었죠. 치사랑보다는 내리사랑이 더 크더라고요.”

내리사랑을 몸소 알게 된 그녀는 네 명의 아이를 더 낳아 오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당시 토건업을 하던 시댁의 사업이 점점 번창한 덕분에 남에게 빚지지 않고 끼니 걱정 안 하며 다섯 아이를 먹이고 가르칠 수 있었다. 그녀는 정성이 가득한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양식까지 소홀히 하지 않은 현명한 어머니였다.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사주었으며, 옹기종기 모여 책을 읽고 있는 오남매에게 꽈배가와 찐빵 등의 간식을 만들어주며 애정을 쏟았다.

책을 좋아하던 오 남매는 모두 명문대에 합격해 어머니의 수고에 보답했다. 특히 과 수석으로 입학했던 둘째 딸은 부모로서의 보람과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러 집을 나선 둘째는 교통사고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어요.”

생때같은 자식의 죽음에 어느 누가 제정신일 수 있으랴마는 태산같던 남편도 아내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남편을 위로하느라 정작 자신은 단장의 슬픔을 안으로만 삭였기 때문일까. 어느 날 몸에 물집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신경염 진단을 받아 6개월간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대상포진이었다. 그래도 슬픔이 마음의 병으로 곪지 않고 몸 밖으로 터져 나와서 다행이었다.

먼저 떠난 동생, 언니, 누나의 몫까지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인정받고 신망이 두터운 어른으로 자랐다. 그중에서도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셋째 딸은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분석 전문의로 유명한 김혜남 씨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중곡동에서 홀로 지내던 오영숙 할머니는 5년 전 역삼동 셋째 딸네로 거처를 옮겼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딸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다. 간병인이 거동을 살펴주고 운동치료사가 재활운동도 담당하고 있어 특별히 손을 보탤 일은 없지만 함께 있고픈 게 엄마의 마음이리라.

 

“남들은 자는 듯이 편하게 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저는 한 사나흘이나 일주일만 아프다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아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요.”

며칠만 앓다가 이 세상 하직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오영숙 할머니. 갑작스러운 이별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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