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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말들
수레 장인에게 배우는 고전 읽는 법 2020년 10월호
 
수레 장인에게 배우는 고전 읽는 법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그 앞 정원에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으로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외람되오나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을 기록한 것입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환공이 노해서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감히 바퀴를 만드는 자가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내가 납득하도록 설명하면 모를까 아니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

 

윤관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퀴의 구멍을 깎을 때 느슨하게 하면 헐렁해서 빠지고, 빠듯하게 하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빠듯하지도 않은 것은 손에 익고 마음이 그에 호응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비밀이 거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했고, 아들 역시 저에게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저는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그런즉 폐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장자》

 


독일의 철학 사상가 막스 베버는 “《논어》를 읽는 것은 인디언 추장의 말을 듣는 것 같다”라고 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인디언 추장의 말처럼 《논어》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막스 베버는 《논어》 <위정>에 실린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짧은 글을 두고 동양을 폄하하기도 했다.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가 정해서 있어 서로 통용될 수 없기에 공자는 군자가 한 가지 구실밖에 하지 못하는 그릇 같은 존재가 되는 걸 경계했다. 베버는 이를 직업적 윤리의식과 전문성의 부재로 해석해 동양의 낙후성이 군자불기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군자불기’란 단순히 군자의 직업적인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군자란 학문의 수양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유연한 사고로 사람과 세상에 대해 두루 통할 수 있는 폭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시간과 지역, 그리고 문화적인 한계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잘 알 수 있다. 막스 베버와 같은 차원이 높은 학자도 자신이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으며 한계를 느끼는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고전은 깊은 의미와 지혜를 담고 있지만, 무턱대고 그냥 읽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장자》에 실린 위의 고사는 고전의 의미와 적용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이 고사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고사에 나오는 환공은 제나라를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었던 패왕이었다. 그 당시 수많은 나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일군 제왕인데, 한낱 바퀴를 만들던 장인이 말을 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단지 이 고사가 세상의 권위를 비웃고 권력을 한낱 지푸라기처럼 여겼던 《장자》라는 책에 실렸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고사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어렵게만 여겨지는 고전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 특히 동양 고전은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읽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동양 고전이 주는 깊이와 지혜에 매료되어 책을 들지만곧 포기하고 만다.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는 게으름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자신을 탓할 일은 아니다.

 

고전을 읽는데 첫 번째 장애물은 바로 한자(漢字)다. 물론 한자를 잘 알면 좋겠지만 고전은 한자를 배우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고전들이 우리 글로 번역되어 나오기에 굳이 한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지나치게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착한다면 바퀴장인 윤편이 말했듯이, 바큇살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게 되는 것과 같다. 만약 어려운 한자로 인해 대충 읽고 넘어간다면 바큇살이 느슨해서 헐렁해 지는 것이다. 결국 두 가지 사례 모두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

 

고전을 읽는다면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이론만 습득하 는 고전읽기는 쓸모가 없다. 지나치게 철학적인 내용으로 내 사고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가 읽는 고전은 윤편이 말했듯이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고전은 삶에 적용할 수 있고 일에 응용할 수 있는 지혜의 보고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말하는 법, 일의 지혜, 공부하는 방법, 부자가 되기 위한 지혜 등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모두 고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고전을 읽을 때는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순히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을 빛나게 하고, 내 일에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 받아들이려면 느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첨단 기업의 경영자들은 인문 고전을 바탕으로 경영하고 있다. 고전의 지혜가 혁신성과 창의력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500년 전 공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을 통해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견했다. 단순히 옛것을 아는 것에 그 쳐서는 안 되며, 옛것을 충분히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는 가르침이다. 고전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옛사람의 찌꺼기가 될 수도 있고, 앞날을 밝히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전을 손에 잡는 일이다.

 

 

조윤제 (고전연구가)

 

오늘을 읽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지혜의 보고 인문고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전을 읽었으며 지은 책으로는 《말공부》 《천년의 내공》 《우아한 승부사》 《다산의 마지막 공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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