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함께 사는 세상
180여 마리 유기견의 마지막 안식처 2020년 10월호
 
180여 마리 유기견의 마지막 안식처

 


‘튼튼이:처음에는 낯가리지만 친해지면 애교쟁이’  ‘총총이:순한 수다쟁이’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사설 유기견보 호소 ‘아지네마을’ 견사 앞에는 각각 팻말이 하나씩 걸려 있다. 이곳에는 이처럼 애교쟁이, 수다쟁이 유기견 180여 마리가 지내고 있다. 이중 최고참은 ‘업이’ 로 아지네마을 박정수(74) 소장이 10여 년 전 구조한 시베리안 허스키다.

 

당시 남양주에 살던 박 소장은 산책 중에 업이를 만났다.

 

“나무에 목줄이 묶여 있었는데 앞에는 개미와 파리가 들끓는 밥그릇이 놓여 있었어요. 내가 다가가니 발라당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지 뭐에요. 곧 보신탕 집에 팔려갈 운명이었는데 어찌 모른척 지나가겠어요?”

 

업이를 비롯해 함께 있던 진돗개 2마리까지 데려왔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대형견을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인천에 있는 보호소에 아이들을 맡겼다. 하지만 얼마 뒤 업이에게서 새끼 10마리가 태어났고, 그녀가 직접 아이들을 보살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사비를 들여 보호소 인근에 시설을 마련한 것이 아지네마을의 시작이었다.

 

얼마 뒤 박 소장이 유기견을 보살펴준다는 소식이 퍼지자 비양심적인 이들이 강아지를 하나 둘 두고 가 아지네마을의 식구는 계속 늘었다. 현재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는 유기견 은 180여 마리. 그간 박 소장 홀로 개들을 보살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남양주에서 인천까지 매일매일 왕복 4~5시 간을 오가느라 몸이 성치 않았고 천식과 허리디스크, 난소암까지 앓게 되었다. 하지만 병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그녀를 더욱 아프게 했다.

 

“평생 가정주부로 지내왔는데 세상물정을 알겠어요? 견사를 짓다 사기를 당해 대금을 떼이기도 했고, 임대를 받은 땅이 농수로여서 수도도 설치할 수가 없었어요. 2018년에 여기로 옮겨왔는데 이곳도 2년 임대가 끝나 비워줘야 하니 걱정이죠.”

 

박 소장은 유기견들을 위해 노후자금도 다 써버리고, 빚만 늘어난 상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고생을 택한 엄마를 자식들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들과의 불화로 8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기까지 했다. 다행히 이제는 자식들도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난소암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초기에 발견을 했어요. 난소암은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좋은 일을 하니까 하늘이 살려준 것 같아요.”

 

난소암 투병중인 박 소장이 보살피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대형견이다. 힘에 부칠 법도 하지만 대형견의 경우 그녀의 도움이 더 절실하다. 사료비는 물론, 병원비도 배로 들어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에서 기를 수도 없는 대형견은 입양이 어려워 안락사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나는 절대 안락사를 시킬 수 없어요. 내가 죽을 때까지 얘들을 보살필 거에요.”

 

180여 마리 유기견들의 엄마로 살아 오며 가장 힘든 순간은 사기를 당했을 때도, 난소암 수술을 받았을 때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들죠. 나는 아무래도 괜찮은데 말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무섭겠어요.”

 

특히나 갑작스레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낼 때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박 소장이 잠을 청하는 컨테이너 한편의 선반에는 작은 유골함 3개가 놓여 있다.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간 꽃순이, 호피, 멀린이의 유골함이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간 반려견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지만 박 소장은 아직 먼저 간 아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일흔을 넘긴 나이의 박 소장은 아지네마을 180여 마리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쓴다. “얘네들을 더 오래 보려면 내가 건강해야죠. 억지로라도 끼니도 제때 먹고 몸에 좋은 것도 챙겨 먹고 있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게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김윤미 기자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무장애 지도'에 펼쳐진 장벽 없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