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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근대건축
남겨진 마을 복원된 역사 2020년 10월호
 
남겨진 마을 복원된 역사

 

한양도성의 큰 4개의 문 중 하나인 서대문의 또 다른 이름은 돈의문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문과 성곽만 흐트러진 게 아니라 성문 안 경희궁도 자취가 묘연해졌다. 1866년 경복궁을 중건하느라 경희궁의 전각들이 옮겨지면서 궁의 역할을 잃어버린 뒤로 1910년 일본인 관료 자제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성중학교와 총독부 관사가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다.

경희궁은 전각을 몇 채 복원하여 궁의 자리를 되찾긴 했지만 돈의문은 흔적으로만 남았다. 지금은 정동길과 송월길, 새문안로가 만나는 지점에 돈의문 터라는 표식만 있다. 그 자리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시작이기도 하다. 3층짜리 검은 벽돌로 된 전시관이 맞이하는 비스듬한 사각형 모양의 동네, 그 동네에 있는 집들 모두를 합하여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라 한다. 전시관 등 새로 지은 큰 규모의 건물들 몇 채를 제외 하곤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던 작은 집들이다.

 

1930~60년대 지어진 도시형 한옥도 있고, 적산가옥이라 부르던 일본식 집도 있고, 70~80년대 흔히 보던 이층양옥도 있다. 이것을 건축적인 표현으로는 ‘내부의 물리적 조직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시대를 보여주는 다양한 스타일의 집들이 꼬불꼬불 골목을 끼고 앉아있어서 박물관 마을이다. 그리고 이 집 하나하나가 공방, 소상공인과 예술가의 작업실, 체험교육관, 마을 전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문안 마을이라 불리던 이곳은 한때 돈의문1구역에 속해 있었다. 공원 부지로 지정되어 철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역사를 담고 있는 낡은 마을을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문화공간으로 되살리자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울의 중심부 큰 빌딩들 옆에 시간이 멈춘 듯한 과거의 동네가 불쑥 등장하게 된 것이다.

 

교남동 철거지역에서 이축해온 11채의 근대식 한옥이 동네 북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앞으로 마을박물관과 도시건축센터가 입주한 이층 양옥 건물들이 언덕을 감싸고 있다. 옛 안길을 따라 여관도 있고, 약국도 있고, 식당도 있고, 가게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만 길과 건물은 옛 풍경을 잃지 않았다. 올망졸망 이어진 골목길은 이 마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걷다 보면 새로운 골목, 새로 운 건물과 만나며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된다.

 

이곳이 처음 공개된 것은 2017년 서울국제건축비엔날레 행사를 개최하면서였다. 크고 작은 집들은 새 단장을 끝내고 규모에 어울리는 다양한 전시물과 이벤트를 품으며 손님맞이에 바빴다. 예술가, 건축가가 합작하여 식량과 환경, 재난 등의 이슈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풀어낸 작품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전시보다는 집들을 돌아보느라 분주했다. 특별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때그때를 풍미했던 보편적인 특징을 가진 집들이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유년의 기억을 일깨우는 친밀함도 있었다. 고급스러움을 한껏 장착한 집들도 여러 채 발견했다. 잘 지어진 집이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적인 요소들, 즉 하드웨어가 무척 좋았다. 여기서 1, 2년 정도 살아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마을은 마을로 기능할 수 있어야 유지된다. 비엔날레가 끝난 뒤 좋은 작품들이 빠져나간 텅 빈 마을은 단기임대 형식으로 콘텐츠 개발자 들을 선별하여 체험관, 전시관, 창작소의 형태로 운영된다. 소란스럽게 운영되었다 소강에 이르는 상황이 반복되자, 이 장소의 방향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집들을 생각한다. 우아한 손잡이와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경첩이 있는 고급스러운 문, 조심스럽게 밟고 올라가야 하는 반질반질한 계단, 네모난 마당 가장자리에 있었을 화단, 늦게까지 스탠드 불이 새어 나왔을 이층방 창문, 도란도란 밥 짓고 밥 먹던 풍경,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안온한 정서들을. 그러다가 생겨난 밥집 골목과 여관들, 낡아가는 집과 변해가는 시대, 떠나는 사람들….

 

도시의 낡은 집이 존재하는 방식을 살펴보노라면, 집은 인과의 산물이 아니라 변화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아쉬운 것도 지금 이 시대에 결핍된 무엇일 것이다. 도시가 지향하는 가치, 삶에 대한 인식, 이 시대에 발현해야 할 정신에 대해 철학적인 고민이 함께 이어지지 않는다면 장소는 결코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가 없다.

 

 

최예선 (작가)

문화유산, 건축, 예술 등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해 글을 씁니다. 오래된 공간의 아름다움, 그 속에 깃든 사람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밤의 화가들》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달콤한 작업실》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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