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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감자탕 한그릇에 우려낸 엄마의 일생 2020년 11월호
 
감자탕 한그릇에 우려낸 엄마의 일생

인천에서 40년 넘게 백반집을 운영하여 쌓아온 오랜 경험과 탁월한 손맛으로

한식은 물론 양식, 중식, 일식까지 못하는 요리가 없는 최옥인 할머니.

그녀의 수많은 비법 중 한 가지를 뽑으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정성이다.

감자탕 하나만 보더라도 손수 시래기를 말리고

핏물을 빼기 위해 무거운 등뼈를 몇 차례 씻어내는 등

그녀가 끓인 시래기감자탕은 가히 정성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김윤미 기자 사진 한영희

 

“감자탕을 오랜만에 끓이니까 간이 안 맞네. 소금을 덜 넣었는지 싱거운 것 같기도 하고. 원래는 더 맛이 있는데….”

 

모처럼 끓인 감자탕이 최옥인(85) 할머니는 영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한평생 밥장사를 해왔기에 음식이라면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던 그녀지만 야속한 세월에 손맛도 둔해졌다. 하지만 제아무리 실력이 녹슬었다 해도 수십 년 감자탕을 끓여온 가닥이 어디 가랴. 그녀의 입에는 예전만큼 못한 감자탕도 서울에서 온 손님은 연신 국물을 떠먹으며 칭찬 일색이다. 잡내 하나 나지 않고 감칠맛이 입맛을 당기는 감자탕은 한때 그녀가 제일 자신 있어하는 음식이었다.

 

감자탕을 끓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핏물을 빼기 위해 무거운 등뼈를 옮겨가며 여러 차례 씻어주고, 그런 다음에는 소주와 생강을 넣고 센 불에 한번 삶아 불순물을 제거해줘야 한다. 이렇듯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누린내도 안 나고 국물 맛도 잘 살릴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기와 감자가 고루 익을 수 있게 깊은 솥을 계속 뒤적이고, 마지막에는 깻잎을 살포시 덮어 향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감자탕을 끓일라치면 몇 날 며칠 고생이었지만 그녀는 예전부터 자주 감자탕을 식탁에 올렸다.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붙어 푸짐하고 진한 국물이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감자탕을 가족 모두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엌 한편에서 감자탕에 넣을 시래기를 말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가족들의 끼니를 살뜰히 챙겼다.

 

실업자였던 남편을 대신해 공장 여공, 미군부대 내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그녀는 아이들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먹는 거라도 배불리, 맛있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감자탕을 비롯한 갖가지 찬과 별미는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더해져 몸에도 좋고 맛도 좋았다.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눈여겨봤다가 따라 해 봤어. 맛을 보면 대충 뭐가 들어갔는지 알겠더라고. 한식은 기본이고, 중식, 양식까지 웬만한 건 다 만들 줄 알았지.”

 

그녀는 특기인 요리를 살려 얼마 뒤 식당을 차리고 밥벌이를 이어갔다. 손님에게 내갈 음식을 차리며 하루 종일 식당 부엌을 지키던 그녀는 집에 가서도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제일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부엌을 떠날 줄 모르는 게 그녀의 인생이었다.

 

인덕(人德)이 넘치는 밥집

 

전쟁이 깊어지던 1951년, 10살이던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황해도 해주에서 큰아버지가 살던 인천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필도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던 남편은 명문대학까지 나온 재원이었지만 도무지 돈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영자신문을 넘겨보며 혼란한 세상을 한탄할 뿐이던 남편을 대신해 그녀가 가장 역할을 떠맡았다. 공 장 여공, 미군부대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그리고 끝내는 백반집 주인으로 일하며 그녀는 악착같이 4남매를 키웠다. 인천 용현동에 ‘해주식당’을 개업한 것은 마흔 중반이 다 되어서였다.

 

“그때는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었어. 우후죽순 올라가는 아파트를 보며 저 중에 왜 우리 집은 없을까 얼마나 되뇌었는지 몰라.”

 

밤마다 되뇌던 그녀의 기도가 하늘에 가 닿았을까. 입소문을 탄 식당 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넉넉한 양도 양이지만 맛깔 나는 음식들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뿐만 아니라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스테이크와 주꾸미볶음까지 한 끼 식사는 물론 술 한 잔 기울이게 하는 메뉴들로 식당에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식당일에 매달리며 너댓 시간 눈 붙이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재미나게 돈을 벌었어. 매일매일 통장에 돈이 쌓이는데 힘들 겨를이 있겠어?”

 

그녀는 현재 40년 정든 식당을 둘째 아들에게 물려준 상태다. 나이도 나이지만 혈액암으로 투병하며 팔의 근육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 칼질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수월하지가 않다. 그런 그녀가 하루 종일 싱크대 앞에 서는 날은 이제 막내딸의 반찬을 해주는 날뿐이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장애를 갖게 된 막내딸이 그녀에겐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바쁜 엄마는 열이 나는 아이를 감기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뒤늦게 병원을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평생 죄인일 수밖에 없는 엄마는 아직도 지천명을 넘긴 딸이 밥은 잘 챙겨먹었는지 걱정이 되어 돼지뼈가 가득 담긴 솥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딸이 가장 좋아하는 감자탕을 끓여 내놓는다.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도맡아야 하는 책임감과 장애를 갖게 된 막내딸에 대한 죄책감까지, 홀로 짊어지기에는 버거웠던 삶의 무게였지만 혼자만은 아니었다. “내가 인덕이 있어. 사람들이 우리 식당에 찾아와주니 이만큼 살 수 있었지. 우리 식당에 와준 손님들이 다 은인이지.”

 

그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식당을 물려주며 일러준 가장 중요한 비법은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행히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은 둘째 아들과 며느리의 음식에도 최옥인 할머니의 손맛이 구수하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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