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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 잔의 추억!
마르지 않을 추억의 술잔 2020년 11월호
 
마르지 않을 추억의 술잔

“야, 가자! 수능이 100일 남았으니 백일주 한 잔 해야지!”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난 친구의 은밀한 제안에 기꺼이 동참해 어느 날 다른 한 친구와 셋이 새벽 1시에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근처의 인적 드문 공원 정자에 둘러앉자 친구가 배시시 웃으며 꺼내든 건 바로 소주 두 병. 회동의 명목은 남은 수험기간을 열심히 보내자고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지만 실상은 술을 마셔보고 싶은 바람이 이끈 작은 일탈이었다. “오늘부로 네 인생 첫 술잔을 채워준 사람은 나다!” 하며 친구가 따라준 인생 첫 술은 약처럼 쓰기만 했다.

 

술잔이 몇 순배나 돌았을까. 금세 취기가 오른 우리는 한마디씩 던졌다. “세상이 진짜 비뚜로 보이는구나.” “와, 느낌 죽인다.” “원래 소주가 이렇게 금방 취하는 거냐?” 술기운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던 그때 친구가 건넨 그 말만큼은 신기하게도 또렷이 들려와 가슴에 박혔다. “다들 성공해라. 그래서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이 친구가 내 인생 첫술 따라준 친구라고 날 소개하면 폼나지 않겠냐?”

 

어느덧 2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친구가 말했던 ‘나중’이 내겐 아직 오지 않은 걸까? 두 친구는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녀석들은 종종 고맙게도 네 첫 술잔 채워준 걸 기억하고 있다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 한다고 격려해준다. 이해관계가 팽배한 이 시대에 그저 내가 잘되기만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우리가 나눈 첫술의 기억은 누구 한 명이 힘들어질 때마다 위로의 말 대신 소환되곤 한다. 그때마다 난 생각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 추억의 술잔만큼은 영원히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주룡

출판 편집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20대 ‘취준생’입니다. 주량이 소주 2병인데 취업난으로 우울한 요즘은 3병까지도 거뜬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어서 취업에 성공해 친구들과 마음 편히 술잔을 기울이고 겨울에는 스키장에도 놀러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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