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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 잔의 추억!
못난 아들에게 건넨 아버지의 술 2020년 11월호
 
못난 아들에게 건넨 아버지의 술

올해 나이 여든두 살인 나는 1964년, 남보다 많이 늦은 나이에 28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내가 남들보다 늦게 군대를 간 데는 가슴 아픈 사정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된 후로 공부를 제대로 이어나가기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리(익산)역 철도국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벌이에 더는 기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꿈을 잃고 방황하는 내게 모교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서무과 보조 자리를 마련해주며 “공부의 끈을 놓지 말아라” 하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날마다 학교에 전화와 전통문으로 ‘군 미필자를 축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바람에 입대를 미룰 명분이 없었다. 제대 후 찾아간 학교엔 내가 설 자리가 없었다. 실의에 빠진 나는 제대 후 1년여를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간밤의 숙취 때문에 방바닥을 구르고 있는데 웬일로 내 방에 들어오신 아버지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 손에는 대두병(1.8L) 소주가 들려 있었다. “그만 일어나거라. 술은 술로 푸는 것이다.” 아버지는 잔이 철철 넘치도록 술을 따라주신 뒤에 말없이 방을 나섰다. 축 처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그만 길고 긴 방황을 끝내야지!’

 

그 뒤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 나는 아버지가 따라주시던 술잔을 떠올리며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최영식

슬하에 1남 2녀를 둔 평범한 이 땅의 아버지입니다. 지난해까지 건설회사에서 관리감독관으로 일하다 퇴직해 현재는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의류디자이너를 거쳐 평생을 건설엔지니어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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