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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아도 보이는 희망
절망에 빠져 있는 당신에게! 2020년 11월호
 
절망에 빠져 있는 당신에게!

한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들 중 감염경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들을 ‘깜깜이 환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가 사는 미국에는 없는 말이라 참 재밌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뉴스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시각장애인들이 ‘깜깜이’라는 말 속엔 자신들을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며 거세게 반발해 더 이상 그 단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는 뒷얘기 때문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나는 그 얘기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사실 시각장애인들을 지칭하는 단어 중에는 듣기 좋은 말이 거의 없다. 망한 사람이란 말처럼 들리는 맹인(盲人)이란 단어부터 장님, 봉사, 소경 등 듣기 좋지 않은 표현만 존재한다. 더욱이 나는 ‘깜깜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시각장애를 가진 내 처지와 얼른 연관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로 44년째 빛을 못 보는 생활을 해왔지만 내가 사는 세계가 깜깜하단 생각을 별로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만 9살 때까지 세상을 눈으로 보았다. 제법 철이 들 때까지 시력이 남아 있던 영향 때문인지 눈을 뜨면 지금도 주위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눈은 이제 해야 할 역할을 못하지만 눈의 역할을 관장하는 시각령(視覺領)은 아직 어느 정도 기능이 남아 있어 그런 착각이 들 수 있다고 의사들은 말했다. 그런데 ‘깜깜이’라는 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니 최근 몇 달 동안 내 주위가 전보다 많이 어두워진 듯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일인지 내게는 요즘 세상이 전보다 더 어두운 회색으로 비쳐지고 있는 중이다.

 

올해는 여러 이유로 기억에 남을 한 해가 될 것이다. 세상을 급속도로 바꿔놓은 코로나19의 공포와 미국 사회를 뒤흔든 인종차별 사건들, 그로 인해 촉발된 시위 소식은 점점 커져 가는 미국 사회의 균열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또 내가 늘 그리워하는 조국에서도 정치 싸움 때문에 가까웠던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끼리도 사이가 서먹해졌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혼자 화병이나 우울증을 앓았던 것이다.

 

설상가상 내 마음을 더 탁한 회색으로 만든 일이 생겼다. 약 2주 전, 회사 동료였던 T가 회사를 떠난 것이다. T는 퇴사 전 동료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12년 넘게 가족처럼 같이 지냈던 팀을 떠나는 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회사가 먼저 그에게 퇴직을 권유했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T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애널리스트였다. 사내에서의 평판도 좋고 동료들에게도 항상 친절하던 사람이라 그가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남은 자의 죄의식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T처럼 괜찮은 애널리스트가 감원될 수 있다면 나 역시 안전하지 않을 거란 걱정이 드는 게 당연했다. 그때부터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을 쉬고, 아내가 하는 말에 성의 없이 답하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 같은 불황에, 적어도 네 식구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내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하루하루 커져만 가는 걱정으로 나의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깜깜이 환자’ 뉴스를 곱씹으며 나는 비로소 극히 어두워진 내 마음 상태를 자각할 수 있었다. 그 회색빛 마음속에 묻혀 있던 감정의 정체는 두려움이었다. 감원에 대한 불안감은 앞을 보지 못하는 내게 늘 상존해 있던 문제였다. 1998년 2월, 나는 뉴욕에 있는 JP모건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었고, 결혼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혼 전 나는 아내가 될 그레이스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JP모건이 처음으로 고용한 시각장애인인 내 일자리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나도 장담할 수가 없어.”

 

하지만 아내는 내 프러포즈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결혼식 때 우리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부유하든 가난하든(richer or poorer)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결혼서약을 하고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곧 단행될 회사의 감원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눈앞이 캄캄했다.

 

나를 믿고 결혼이라는 모험을 시작했던 아내에게 면목이 없었다. 아직 낳지도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심한 죄책감이 들었다. 게다가 영주권 수속을 회사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던 나는 빠른 시일 내에 영주권 후원을 계속 해줄 고용주를 구하지 못하면 아내와 함께 미국을 떠나야 할 상황이었다. 6월 말까지 새 직장을 찾지 못하면 결국 미국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털어놓는 내게 아내는 내 일생을 뒤바꿀만한 말을 들려주었다.

 

“당신 이름을 감원리스트에 올린 사람은 확실히 큰 실수를 했고, 세상에는 당신을 스카우트 하고 싶은 고용주들이 많이 있어. 당신은 누구보다 유능한 사람이야! 지금이 당신한테 전화위복의 기회였다는 걸 알게 될 날이 올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해주는 격려의 말이 꺼져가던 내 자신감에 불씨를 지펴주었다. 아내 말대로 나는 4개월 만에 두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았고, 내가 원하던 주식 애널리스트 자리와 73%나 인상된 연봉을 주겠다는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Brown Brothers Harriman)으로 직장을 옮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런 경험까지 했던 내가 친한 동료의 감원을 목격하고 필요 이상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도 우습잖아.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부터 동료의 퇴사까지, 내 마음을 흔들던 두려움의 정체를 직시하기로 마음먹으니 세상이 한결 밝아지는 것 같았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기 위해 책을 읽고 감사 일기를 열심히 썼다. 신앙 역시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길잡이가 돼주었다.

 

깜깜이 확진자 뉴스 덕분에 내 삶의 가장 큰 기회를 만들어준 ‘감사의 마음’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 고맙다. 눈을 뜨든 감고 있든, 내 세상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올 것은 무엇이든 와도 좋다. 삶을 파괴할만한 대지진과 같은 일이라도 감사할 이유가 분명 찾아질 것이다.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다시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다.

 

신순규(재미 애널리스트)

아홉 살 때 시력을 잃었지만 학업에 매진해 25년 넘게 미국 월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증권 애널리스트입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금융 분야의 최종 자격증’이라 불리는 CFA를 취득했고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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