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지구별 우체통
다양성이 인정되는 호주의 통합교육 2020년 11월호
 
다양성이 인정되는 호주의 통합교육

4년 전 네 돌을 넘긴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호주로 이민을 온 나는 운이 좋았다. 주변 이민자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주택살이는 내 인생 버킷리스트였고, 저녁 5시면 모두 셔터를 내리는 각종 상가나 음식점들은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의 회색 빌딩숲에 질려 있던 나에게 사방에 널린 초록의 자연과 파란 하늘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상대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호주에 살면 반은 자연이 아이들을 품어 키우기 때문이다.

 

‘먼저 행동하고 생각하는 아이.’ 사람들은 이런 성향을 가진 내 아이를 ADHD (주의력 결핍 장애)라 부르지만 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라 부른다. 특별한 만큼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 또한 남다른 노력과 이해가 수반돼야 했다.

 

나는 아이를 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는 아이가 등교하고 난 뒤에도 학교 주변을 자주 맴돌았고, 종종 담임에게 용기 내어 부탁을 하곤 했다.

 

“죄송하지만, 벤(가명)에게 과제를 줄 때는 조금씩 여러 번 나눠 말해주어야 이해를 할 수 있어요.” “벤이 충동적이고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할 거에요. 버릇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 아이에게 질문하는 예절을 가르쳐주면 점차 나아질 거예요.”

 

해마다 만나는 호주의 교사들은 어렵게 말을 꺼내는 나에게 모두 상냥하고 친절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교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벤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들이 있다면 내게 언제든 알려주세요.”

 

그동안 아이의 학교생활을 통해 경험한 호주의 교실은 한마디로 비빔밥이다. 형형색색의 각종 채소와 재료가 비벼져 비빔밥의 맛을 내듯이,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인종·문화·언어·종교를 지닌 아이들이 교실이란 커다란 양푼 속에 담긴다. 그 속에서 교사는 학생들 각자가 지닌 개성을 존중하되, 호주란 사회가 추구하는 공공의 가치와 조화로움을 이루는 교육을 실시한다. ‘이민자들의 국가’ 라는 칭호에 걸맞게 호주 교사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실천해야 할 가치는 바로 통합(Inclusion)이다.

 

호주의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이나 학습도움실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를 진단 받은 아이들도 부모가 원하면 일반학교의 일반학급에서 온종일 교육을 받는 게 원칙이다. 해당 아동을 교사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면, 보조실무사(특수학교나 일반학교에서 장애아동을 돕는 역할)를 해당 아동의 교실로 배치해서 맞춤별 지원을 한다.

 

가끔 한국의 뉴스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비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장애 아동을 기피하거나 특수학교로 보낼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요구할 수도 없다. 공동체의 가치에 반하는 이기적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의 통합교육은 장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장애·비장애 아동의 통합이란 좁은 개념을 넘어 학습부진 아동에게도 교사는 수준별 수업을 제공해야 하고, 갓 이민을 와서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아이도 학급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난민으로 호주에 넘어온 가정의 아이도, 호주 선주민인 ‘어보리진’의 정체성을 가진 아이도 교실 안에서 차별 받지 않고 어우러지도록 배려해야 할 책무를 갖는다.

 

호주 생활이 익숙해진 지금은 교사에게 내 아이를 위해 이런저런 요청을 하는 것이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오히려 연말에 담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건 제법 근사한 일이다. “한 해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벤 덕분에 다양한 아이들을 더욱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혜정(브런치 작가)

한국에서 중등 교사로 재직하다 호주로 이민을 왔습니다. 오마이뉴스와 브런치에 호주의 교육과 장애 분야 관련된 글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통합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보조 실무사 양성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버스가 건네던 인사 '오늘도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