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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더럽고 하찮은' 똥물의 역설 2020년 11월호
 
'가장 더럽고 하찮은' 똥물의 역설

동초 김연수에서 비롯된 ‘동초제’ 판소리의 계승자 이일주(84) 명창의 증조부는 19세기 조선 소리판을 주름잡았던 이날치(1820~1892) 명창이다. 전남 담양의 어름사니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날치처럼 가볍고 날쌔게 줄을 잘 탄다하여 ‘날치’란 예명으로 불렸던 그는 뒤늦게 판소리에 욕심을 내어 서편제 대가인 박유전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배운 당대의 명창이었다. 탁하고 거친 수리성과 높고 힘찬 통성으로 사랑받는 이일주 명창의 소리는 ‘조선 후기 8명창’ 중의 하나였던 증조부 이날치와 일제강점기 ‘우리국악단’에서 활동했던 부친 이기중의 소리 내력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서편제 소리 집안 출신인 이일주가 오늘날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취해 출발한 동초제 소리의 적통자로 불리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것은 이일주가 자기 집안 소리에 머물지 않고 이십대 후반부터 김연수의 제자인 오정숙, 동편제 여류명창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 여러 대가들의 소리를 두루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일주의 〈심청가〉는 김연수에서 오정숙으로 이어진 동초제의 것이고, 박초월에게 사사한 <춘향가>는 서슬 있는 동편제의 특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일주가 서울로 올라와 여류명창 박초월 문하에서 소리 공부를 재개한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다. 열아홉 살 때 충남 부여의 농부에게 시집을 갔으나 시댁에서 더 이상 소리 공부를 못하게 하자 어린 딸을 데리고 집에서 나와 박초월 문하를 찾아갔던 이일주는 이때 소리꾼들이 왕왕 겪게 되는 시련을 만나게 된다. 공부에 억척을 부린 나머지 목이 상해버려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는 반벙어리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득음(得音)에 이르기 전, 어린 소리꾼들 중에는 수련과정에서 성대 결절이 생겨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일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영영 소리를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안절부절못하던 그녀에게 소리꾼 친구의 어머니가 특효약이라며 가져온 것이 정종병에 가득 담아온 인분, 즉 똥물이었다.

“정말이지요? 득음만 헐 수 있다면 못할 게 뭐 있것소. 소리공부 허는디 똥물이라고 마달 것이오?”

 

25원을 주고 산 똥물 한 병을 이일주는 다락방 구석에 몰래 숨겨놓고 약처럼 아껴 마셨다. 과연 몇 달이 지나자 목이 다시 돌아왔다. 똥물을 장복한 덕에 몸을 회복한 그녀는 공부에 더욱 매진한 끝에 마침내 명창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목이 쉰 듯한 껄껄한 음색의 단단한 수리성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른 바 ‘득음(得音)’을 이룬 것이었다. 마흔네 살이던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해 판소리 명창부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일주 명창의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음반은 지금도 소리애호가들이 가장 아끼는 명반으로 꼽힌다.

 

인분(人糞)에는 인산이 풍부하고 미네랄과 염분이 있어 타박상이나 울혈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일본 등에서도 인분을 말려 복통을 다스리는 약재로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인분의 즙 자체를 복용하는 경우는 한국의 소리꾼들에게도 드문 일이었다.

 

명창들이 전하는 ‘똥물 복용법’은 대개 이렇다. ‘전통적인 재래식 화장실에 속을 파낸 왕죽(대나무)을 꽂아 약 한 달간 인분을 모아 숙성시킨다. 이후 왕대를 걷어와 면을 덮은 단지 위에 걸러내면 맑은 똥물이 모이는데 이를 병에 담아 약처럼 몇 개월에 걸쳐 장복해야 효과가 있다. 마실 때 생강 조각 등을 곁들이면 역한 냄새를 줄일 수 있다.’

 

가수 조관우의 부친으로도 유명한 조통달(75) 명창이나 인간문화재 신영희(78) 명창 또한 젊은 시절 상한 목을 달래기 위해 똥물을 걸러 마셨던 근성으로 유명하며, 살아생전 일세를 풍미했던 故 박동진, 임방울 명창 또한 목에서 피가 날 때까지 수련을 하다 똥물을 구해 마시고 득음에 이른 일화로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하찮고 더러운 것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똥’에 비유하곤 한다.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그 더럽고 냄새 나는 똥물까지 목으로 넘기길 마다하지 않던 소리꾼의 열정과 노력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누군가 ‘당신은 꿈을 이루기 위해 똥물까지 마실 의지와 용기가 있는가’ 묻는다면 우리는 과연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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