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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아도 보이는 희망
행복을 망 2020년 12월호
 
행복을 망

 

이사를 준비하면서 새집에 있는 화재경보기와 일산화탄소감지기, 소화기를 새 모델로 바꾸는 일을 올해 만 15살인 아들 데이비드에게 맡겼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도구박스와 전기드릴을 들고 다니며 원래 아빠가 해야 하는 일들을 불평 한마디 없이 해치우는 아들이 너무 대견해 보였다.

 

언제 이렇게 훌쩍 컸는지 흐뭇하게 지켜보다 옛날 생각이 났다. 아내는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가 아들이란 얘기를 듣자 “근데 우리 애가 커서 모터사이클을 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하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아들 데이비드를 향한 엄마의 첫 걱정이었다.

 

너무 앞서간다며, 또 겁 많은 아빠를 닮았으면 모터사이클 따위엔 관심도 없을 거라며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사실 나도 속으론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흔히들 남자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아빠 노릇을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런 불안을 갖게 된 건 서울맹학교에 다닐 때 존경하던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쓴 글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매까지 맞고 돌아온 아들을 달래주면서 선생님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장님 주제에 자식 욕심을 부리다 내 자식까지 이렇게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데이비드는 여느 아이들처럼 말도 많고 웃음도 많은 아이로 착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명랑하고 해맑던 아이가 6살 무렵부턴가 조금 과민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내가 바닷가에 가는 걸 몹시 두려워했다. 어쩌다 바다에 놀러가 물 쪽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뛰어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아빠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처음엔 앞을 못 보는 아빠가 파도에 휩쓸려 갈까 걱정되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데이비드는 내가 다른 어른들이나 아내와 같이 물 쪽으로 걸어가도 막무가내로 앞을 가로막았다.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나는 데이비드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넌지시 “아빠가 학창시절 수영 종목에서 동메달을 땄을 만큼 수영을 잘한다는 거 너는 잘 모르지?” 하고 말을 붙여보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나는 88서울패럴림픽(paralympic) 출전 선수를 뽑는 선발전에 나간 경험이 있다. 수영을 배운 지 얼마 안 돼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나갔던 뉴저지 선발대회에서 나는 동메달을 받았다. 출전 선수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말했지만, 내가 꽤 괜찮은 수영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데이비드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만 6살짜리 아이가 아빠가 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꿈을 꾸었다며 울먹거렸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아빠는 너무 무거웠어. 나는 아빠를 끌어낼 수가 없었어.”

 

급기야 아들은 실제 겪은 일인 것처럼 무서워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데이비드가 왜 그렇게 나를 바닷가에서 밀어내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구나! 아직 어린 네가 아빠의 안전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아 왔구나!’ 장애인을 직원이나 친구로, 심지어 배우자로 선택할 수는 있어도 친부모로 혹은 친자식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 아빠를 둔 데이비드가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생각과 걱정을 갖고 있다는 걸 나는 너무 쉽게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자신의 선택과는 전혀 상관없이 장애인 아빠를 두게 된 데이비드의 마음을 감안해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데이비드는 전처럼 많이 웃지 않는다. 녀석은 대신 지금도 몇몇 친한 친구들과 틈만 나면 모여서 놀고 주말에도 몇 시간씩 온라인 게임을 즐기곤 하는데 데이비드의 친구들 역시 나처럼 부모들이 각각 이탈리아, 영국에서 온 이민자 자녀들이다. 얼마 전 그중에 누가 데이비드의 ‘베프’인지 슬쩍 물어보니 아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다친하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마음을 터놓고 깊은 대화를 하는 친구가 있을 거 아냐?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 아빠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그러자 데이비드는 모처럼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다른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에 비하면 시각장애인 아빠는 문제도 아니더라고….”

 

데이비드의 친구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혼한 부모가 둘 다 재혼하면서 생긴 여러 의붓 형제들과의 갈등, 엄마나 아빠만 같은 동생들을 갖게 된 친구, 부모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기 힘들어 한다는 얘기. 그러면서 데이비드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빠가 나 어렸을 때부터 공놀이도 같이 못하고, 낚시도 같이 못 가고, 자질구레한 집안 수리 등도 나를 시키는 것 때문에 미안하단 말을 했는데 이젠 그만해도 돼. 내 말도 잘 들어주고, 속 깊은 대화도 많이 해주고, 《해리포터》나 《헝거게임》 같은 책도 같이 읽으면서 토론해주는 아빠는 아주 드물더라고. 아빤 나한테 언제나 최고였어!”

 

아이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이유로 불행해지거나 부모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들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태어난 지 15년 반이 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나 환경, 현실을 초월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는 어느덧 한 명의 인격체로 우뚝 서 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만이 데이비드 개인의 세계를 형성할 것이다. 결국 나는 부모라는 입장에서 쓸데없는 근심, 괜한 죄책감, 이유 없이 미안한 마음만 앞세우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아이들이 보다 넓고 깊게 경험하며 자기 앞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생의 친구’ 같은 역할만 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내가 걱정하던 ‘모터사이클맨’은 아직 우리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신순규(재미 애널리스트)

아홉 살 때 시력을 잃었지만 학업에 매진해 25년 넘게 미국 월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증권 애널리스트입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금융 분야의 최종 자격증’이라 불리는 CFA를 취득했고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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