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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새의 위로 2020년 12월호
 
이름 모를 새의 위로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그간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며 놀라웠던 건 이곳에는 새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는 새를 보고 ‘지저귄다’고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우짖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힘차게 운다. 특히나 새벽에 우렁차게 우는 새 때문에 잠에서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새소리만큼이나 뉴질랜드의 거친 비바람도 나의 새벽 단잠을 깨우는 방해꾼이다. 폭풍이 심한 날이면, 이대로 집이 뽑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곤 한다. 어제도 바로 그런 날이어서 새벽녘 요란한 비바람 소리에 잠이 깼다. 일어난 김에 일찍 하루를 시작해볼까 하고 부지런히 세수를 하던 중이었다. 조금 열려있던 화장실 창문 틈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세찬 빗소리를 뚫고 오늘도 여전히 새가 울고 있었다. 아니 우짖고 있었다. 거센 비바람도 그저 삶의 한 부분이라는 듯, 여느 때와 같은 힘찬 소리였다.

 

하도 시끄럽게 우는 통에 새벽잠을 깨우는 불청객 정도로 여겼던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어제는 나를 위로했다. 험한 비바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한 존재가 왠지 나 같았다고 해야 할까.

 

서투른 외국어 때문에 일상에서 당하는 무시에는 기를 쓰고 맞받아치곤 했는데, 도리어 나를 투명 인간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무관심에는 어딘지 모르게 위축이 됐었다. ‘어차피 말해도 귀기울여주지 않을 테니까’ 하며 지나치던 침묵의 순간들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나 보다. 새 한 마리가 세찬 풍파 속에서도 여전히 우렁차게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며 깨달았다. 삶의 비바람이 나를 덮칠 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아라

독일어 번역 노동자로 밤낮없이 일에 치여 살다가, 뉴질랜드로 잠깐 '도망온' 30대 여성입니다. 현재는 문학 치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단어의 어원이나 쓰임에 대해 고찰할 때 행복하고, 독서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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