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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을 구하는 착한 가방 2021년 2월호
 
소방관을 구하는 착한 가방

열악한 소방관의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소방관들이 장갑을 사비로 사서 쓴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16년 당시 건국대학교 재학생이던 ‘119REO’의 이승우(28) 대표도 이 같은 언론 보도들을 접하며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아리 친구들과 소방관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소방관들을 직접 만나서 들은 바는 언론 보도와는 조금 달랐다. 장비 부족보다는 암으로 고통 받는 소방관들의 이야기가 더 깊이 와 닿았다. “화재현장에는 수많은 유독성 물질과 유해물질이 뿜어져 나와요. 이러한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은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소방관들이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기는 힘들어요. 암 발병의 원인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 하거든요.”

 

특히나 2014년 심장혈관육종암으로 목숨을 잃은 故김범석 소방관의 이야기는 이승우 대표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렸다. 김범석 소방관은 세상을 뜨기 직전 아버지에게 부탁 하나를 한다. “내 병이 인정받기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죽고 나면 소송이라도 해 줘.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어.”

 

암투병 소방관들을 돕기 위해 이승우 대표가 떠올린 건 폐방화복 업사이클링이었다. 폐방화복을 가방으로 만들어 그 수익을 암투병 소방관에게 돌려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일일이 소방서를 찾아다니며 폐방화복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지만 어렵사리 얻은 폐방화복을 가방으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난관이었다.

 

건축학도인 그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물어 재봉을 배우고 공장 등을 동분서주하며 여러 사람들의 도움 끝에 마침내 폐방화복을 활용한 가방을 만들었다. 판매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루어졌다. 소방관의 처우개선과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가방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결과 일주일 만에 1,400여 명이 모였다.

 

“애초에 1년 프로젝트로 생각했고,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기부금 전달까지 마쳤어요. 하지만 감격도 잠시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여전히 암투병 소방관들의 힘겨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기부금 전달을 했다고 끝일까?’”

 

프로젝트를 여기서 끝내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방관이 처한 현실과 제도적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다. 소방관들의 이야기와 사진들로 꾸민 전시회를 총 세 차례 진행했는데 그중에서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전시에 소방관의 처우와 관련된 세 주무부처의 담당자들이 참석해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

 

2020년에는 아쉽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전시회를 개최할 수 없었지만 나름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한 해였다. 이승우 대표 혼자 꾸려오던 119REO에 새 식구들을 영입해 보다 다양한 제품도 개발하고 판매처도 다각화했다. 현재 이 대표를 포함해 다섯 명의 직원이 가방, 지갑, 팔찌 등 30여 종의 제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의 50%는 암투병 소방관들을 위해 쓰인다. “그동안은 저 혼자 급여 없이 일을 했었는데 새 식구들도 생기고 더 열심히 뛸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패션기업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故김범석 소방관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 끝에 승소해 2019년 9월 아들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소방관들이 외로이 병마와 싸우고 있다. 119REO의 REO는 ‘Rescue Each Other(서로가 서로를 구하자는)’의 약자로, 소방관이 우리를 재난에서 지켜주니 우리가 소방관을 지켜주자는 의지를 담았다. 이제 진짜 우리가 소방관들을 지켜줄 차례다.

 

www.119REO.com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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