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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차 베테랑 감독의 끝나지 않은 질문 2021년 3월호
 
15년 차 베테랑 감독의 끝나지 않은 질문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단 얘기가 있다.

K팝 뮤직비디오 이사강 감독을 프로로 인정하게 되는 이유는

15년이란 경력에만 있지 않다.

자신이 나아갈 다음 단계를 부단히 갈고닦는 성실함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글 한재원 기자

사진 이권호

세계 음악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K팝의 성장세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지난 2020년에도 멈출 줄 몰랐다. 콘서트와 글로벌투어 등이 잇달아 취소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음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4.9% 증가한 2030억 원, 수출국은 110여 개국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 못했던 한국대중가요의 융성은 K팝 가수들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흘리는 K팝 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뮤직비디오 감독 이사강(41) 역시 K팝 열풍을 이끄는 숨은 주역 중 한 명이다. 2007년 하동균의 <나비야>로 데뷔한 이 감독은 지난 15년 동안 150여 편 이상 연출, 400여 편을 편집하며 K팝의 최전선에서 땀 흘려왔다. 뮤직비디오 한 편당 한 달 정도의 제작기간이 소요되는 걸 감안하면 편집 작품을 포함해 어떻게 1년에 40여 편씩이나 되는 작업량을 소화해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2AM, 슈퍼주니어, 인피니트, 나인뮤지스 등 정상급 아이돌 가수의 뮤직비디오는 물론 단편영화, CF, 웹 예능 같은 이른바 ‘숏폼 콘텐츠’까지 줄을 잇는 그녀의 다작(多作) 이력은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져온 열정의 깊이를 입증한다. 

 

“지치진 않아요. 런던필름스쿨에 다니며 영상감독을 꿈꾸던 시절부터 많은 편수를 찍고 싶었거든요. 그래야 작품에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한 편을 오래 찍다보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중간에 달라질 소지가 있잖아요. 지금의 생각을 오롯이 반영하기에 저한테는 짧은 영상이 더 적합할 거라 여겼어요.”

 

그녀가 선호하는 영상의 분량은 짧지만 제작에 수반되는 고민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시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 그녀는 그때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노래를 가장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콘셉트는 무엇일지, 어떻게 콘티를 구성하면 콘셉트가 효과적으로 드러날지, 색감의 자유를 얼마나 허용할지 등 그녀의 제작 기준은 꽤 까다롭다


특히 요즘에는 안무 연출에 가장 공을 들인다. 본래 정해진 안무를 정확히 촬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같은 퍼포먼스라도 뮤직비디오에서는 눕거나 벽을 잡고 춘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연출해 기존 무대와 차별화를 주기 위해 애쓴다.

 

“춤은 물론이고 색감 표현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어요. 하늘조차 한 번도 촬영본 그대로 놔둔 적이 없죠. 하늘, 구름, 의상, 바닥, 벽 모두 하나하나 따로 색 보정을 해요. 인물도 당연히 피부 톤 보정은 물론 눈의 선명도를 올려 집중도를 높이고요.”

 

 

이 감독의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손목에는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다. 그동안 뮤직비디오의 후반작업까지 직접 도맡아오느라 생긴 고된 시간의 흔적이다. 편집, 색 보정, 음향효과 같은 후반작업 과정은 각 단계별로 별도의 전문가가 맡는 것이 관례지만 이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한다. 연출의도와 촬영환경을 잘 아는 본인이 하는 것이 완성도를 더 높이는 방법이란 생각에서다.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후반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에 피로도가 높다. 그럼에도 촬영이 끝나고 이어지는 약 열흘간의 후반작업 기간 동안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화장실 갈 시간까지 아껴가며 한 순간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제작 과정 하나하나 직접 챙기며 정성을 쏟기란 K팝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터. 평소 K팝 가수들을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깊은 그녀는 아이돌그룹 멤버 개개인을 균등한 분량으로 뮤직비디오에 출연시킨다. 인기 높은 멤버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해 주목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표정연기를 어려워하는 멤버에게는 세심한 조언을 통해 자연스럽게 퍼포먼스를 펼치도록 도우며, 사전 미팅을 여러 번 가져 멤버 각자의 개성을 파악해 뮤직비디오에 잘 드러낼 방법을 연구한다.

 

“촬영 전에 표정연기나 제스처를 연습해보라는 숙제를 내주곤 해요. 기대했던 것보다 곡에 대한 표현력이 많이 늘어서 오는 걸 보면 그들의 열정이 느껴져 피로가 싹 가시죠. K팝 가수들은 연습생 시절을 오래 거치는 만큼 꿈을 향한 절실함이 커요.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에 좋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국내 아이돌 가수들을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임해온 그녀에게 K팝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요즘만큼 뿌듯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보람이 커지는 만큼 고민도 깊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지금 위치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한 분야에 오래 몰두해온 베테랑의 건강한 고민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K팝 산업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예전의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화면에 멋있게 나오는 것에 만족했다면 이젠 아무리 가수가 멋지게 담겨도 익숙한 장면이 등장하면 뮤직비디오에서 눈길을 거두고 만다. 보다 새로운 연출을 시도해보고 싶은 의욕이 항상 그녀를 종종걸음 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루 이틀만에 촬영이 이뤄지는 뮤직비디오는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제작된다. 주어진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한다면 바쁜 가수들과 다시 시간을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보충촬영은 예산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획사는 새로운 연출을 시도하다가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으로 일정에 차질을 빚기보다 안정적인 연출로 무사히 촬영을 끝내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현실적 한계를 부단히 실감해온 이 감독은 부쩍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제작 편수는 적었지만 한 장면 한 장면 제 영혼을 담는다는 느낌으로 정성을 들였거든요.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훨씬 많은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떻게 하면 영상으로 특별한 울림을 줄까 하는 고민을 전만큼은 못하고 있지 않나 반성이 되요. 마음껏 창의력도 발휘하고 싶고, 편수도 줄이고 싶지 않은데 답을 찾기가 참 어렵네요.”

 

10년 전, 가수 ‘로티플스카이’의 뮤직비디오 제작기를 인터뷰하기 위해 이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국내 최초로 전 분량이 3D기술로 제작된 그녀의 작품이 화제에 올랐던 시점이었다. 애초 2D 제작을 계획했던 터라 콘셉트, 촬영장소, 장비 등 모든 것을 전면 수정해야 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선 데 대한 만족감을 표하던 그녀의 미소가 생생하다. ‘앞으로 남다른 도전정신으로 독창적인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감독이 되겠구나’ 하며 나름 젊은 감독의 미래를 점쳐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는 도전을 즐기기보다 편차 없는 완성도를 추구하는 프로 감독이 되었다. 그 여정 동안 현실에 맞춰 꿈을 수정해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라는 걸 알게 됐을 만큼 그녀의 연륜은 깊어졌다. K팝 뮤직비디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올라선 시류에 안주하지 않는 이 감독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10년 전에 가졌던 기대감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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