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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그 사람이 내 친구입니다
반백 년 친구의 암 검사 2021년 3월호
 
반백 년 친구의 암 검사

“체중이 줄어 병원에 갔더니 암일 수도 있다고 하네. 정밀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는데 자네가 보호자로 같이 가주지 않겠어?”


친구의 전화에 가슴이 철렁했다. 다른 일 다 제쳐 두고라도 시간 맞춰 가겠다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정작 아내나 아들딸에겐 내색도 못하고 있을 친구의 마음이 헤아려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나이 올해 일흔 일곱. 그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서울토박이, 친구는 경남 창녕이 고향이지만 통하는 것이 많았던 우리는 금방 친해져 안암동 골짜기에서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다. 친구는 그때부터 선생님과 친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수재였다. 꿈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그를 보며 나 또한 보고 느끼는 것이 많았다. 모두의 기대대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친구가 “우리 과에는 전교 2등 했다는 애가 하나도 없더라고!” 하고 웃으며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제 갈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친구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사람의 미래는 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신념으로 친구는 나와 함께해온 반백 년 동안 누구보다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조간신문 헤드라인에 실린 홍수 기사를 보며 “여기가 우리 고향 마을인데…” 하고 눈물짓던 까까머리 소년이 어느덧 노년이 되어 암 검사를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어제 병원에 함께 다녀온 뒤부터 나는 친구의 전화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나 나올 거라고 한다. 하루 빨리 “괜한 걱정 시켜 미안했어. 별일 아니라네. 용종 하나만 떼어내면 된대”라는 친구의 밝은 목소리가 듣고 싶다.”

 

이종원 

IMF 때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 미국에 건너가 10년 넘게 아파트매니저로 일하다 귀국해 노년을 즐기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가 있어 좌절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두 아들에게도 인생의 귀감이 되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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