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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인재양성을 위한 추사의 가르침 2021년 3월호
 
K팝 인재양성을 위한 추사의 가르침

하늘은 애초에 지역의 차이나 신분에 차이를 두지 않고 고르게 인재를 내는데

누구는 성취하고 누구는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김정희, 《완당집(阮堂集)》, 권1 〈설(說)〉, ‘인재설(人才說)’ 중에서.


 

작년에 좀 특이한 일이 있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교전상태에 돌입하자 두 나라 청년들이 종전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한글로 적어 세계에 알린 것이다. ‘전쟁을 멈춰라’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역사가 되풀이되도록 놔두지 마라’ 등의 내용을 한글로 적은 팻말을 들고 있는 사진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 나라들은 우리의 인접국가도 아니고 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한글이었을까? BTS(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의 전 세계적인 규모를 고려할 때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도 민주화 시위를 진행하면서 지지와 동참을 요청하는 글을 작성해서 전 세계에 호소했는데, 거기에도 한글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한글로 만들어진 호소문에는 1987년 6월 항쟁처럼 태국도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우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일련의 상황을 보며 날로 커지는 한류의 위상과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한류는 더 이상 문화의 영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K팝이 단순히 춤과 노래, 무대 연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까지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류를 이끌어가고 있는 스타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K팝의 인재양성 방식에는 물음표가 생긴다.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사람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자기 사고가 깊어지고 그 사고가 자신의 전문 예술 분야에 투영되어 만들어질 때 비로소 그 결과물이 진짜 자기 목소리를 담은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10대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닫힌 공간, 닫힌 관계 속에서 춤과 노래만 내내 연습하는 현재 K팝의 인재양성 방식은 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 곧 3월이다. 개학(開學), 배움이 시작되는 달이다. 새로운 꿈이 새순처럼 돋아나는 계절인 것이다. 새로운 배움의 걸음을 튼튼하게 내딛고 건강하고 푸르게 인재를 키워내는 데에 추사 김정희의 ‘인재론’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희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하늘은 인재를 고르게 세상에 내는데 세상에는 왜 성취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느냐고. 왜 그런 것일까?


먼저 그는 첫 번째 문제로 닫힌 조기 교육으로 인해 사람을 가두는 문제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아이 적에는 대개 총명한데, 겨우 제 이름을 알고 쓸 줄 알 정도가 되면 부모와 선생이 이미 앞 세대가 정리해놓은 유명하다는 주석과 핵심만 추려놓은 요약본 같은 것으로 아이를 몰아붙인다. 이에 종횡무진하고 한없이 넓고 넓은 옛사람들의 글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한 번 혼탁한 먼지를 먹고는 다시 그 머리가 맑아질 수 없다. 이것이 그 첫 번째 까닭이다.”


부모와 스승은 아이들이 다양하고 넓은 세계로 걸어 들어가게 해주어야 하는데, 얼른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되레 울타리를 치고 가둬서 아예 그 무한한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잘못을 종종 범하곤 한다. 섣부른 조기교육은 위험하다.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일까? 시험이라는 일정한 틀로 사람을 가두는 것이다


“다행히 어찌어찌 진학을 하더라도 이미 둔해진 머리라 민첩하고 통달하지 못하여 보람도 없이 과거시험 공부에만 매달리다가 오랜 뒤에는 얼굴에서 생기조차 사라져 버리니, 어느 겨를에 제한된 틀 밖의 것을 논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그 두 번째 까닭이다.”

대학입시도 우리 아이들의 넓은 공부를 망치지만 기획사 연습생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기획사가 원하는 창법과 춤을 연습하게 할 뿐, 진짜 춤이란 무엇인지, 음악이란 무엇인지, 발성이란 무엇인지, 노래란 무엇인지, 건강한 재능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추사는 견문이 좁은 데서 생기는 폐해를 지적한다.

 

“사람이 제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그가 나고 자란 환경을 보아야 한다. 궁벽하고 적막한 곳에서 나고 자라서 넓은 자연, 다양한 사람, 화려한 인간 사회, 그 안에서의 자유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크고 높고 웅장하고 그윽하고 특이하고 괴상하고 호방한 일들을 직접 목격해보지 못하면 생각이 세련되지 못하고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보고 들은 것이 협소하면 행동 또한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게 된다. 이것이 그 세 번째 까닭이다.”


애써서 울타리를 칠 것이 아니라 넓은 세상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이 보고 들어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내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간이 모여 빚어내는 무늬가 얼마나 찬란한지, 인간이 인간의 눈물을 어떻게 아름다운 역사로 바꾸어내는지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뚝이면서도 그런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김정희는 말한다. 훌륭한 예술이란 남의 것을 따라 흉내나 내는 그런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영험한 기운이 황홀하게 찾아오고 생각하지 않아도 와서 그 특별하고 기이함을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예술은 대중예술이든 순수예술이든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결국 대중에게 외면받는다. 예술에서 거대한 한 획을 그은 김정희의 말이라면 한 번 믿고 따라봄직 하지 않겠는가! 한류는 절대 작은 물결이 아니다. 이 물결이 세계가 대한민국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세계 사람들은 우리의 문화가 절뚝거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류는 이제 김정희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부모도 기획사도 10대를 가두지 말고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깊은 눈을 투영한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해주어야 우리의 내일이 더욱 찬란할 것이다.

 

임자헌(고전번역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위원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현재는 《조선왕조실록》 현대화사업에 참여해 재번역 및 수정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시민을 위한 조선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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