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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은 시간 속을 사는 배우, 이주연 2021년 4월호
 
뜻깊은 시간 속을 사는 배우, 이주연

 

에디터 한재원 |사진 유경태

 

연극 <스페셜 라이어>를 보기 위해 객석에 앉으니 묘한 설렘이 찾아왔다. 모처럼 느끼는 공연장 특유의 활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배우 이주연(35)의 연기를 이제야 진득하게 감상할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연극은 분량을 떠나 그동안 그녀가 매 작품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며 내공을 쌓아왔는지 짐작하게 해 더욱 흥미로웠다. 남편 존 스미스를 사랑하는 아내 ‘바바라 스미스’ 역을 맡은 배우 이주연은 남편의 거듭되는 거짓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바바라의 감정선을 촘촘하게 이어가며 몰입도를 높였다. 섬세한 표정연기도 좋았지만 감정이 확실히 담기면서도 절제력 있는 목소리 톤에서 베테랑 배우 못지않은 안정적인 연기력이 느껴졌다.

 

 

이번 연극 무대에서 느끼는 에너지가 그동안 화면에서 봐온 것과는 좀 다르네요. 단순히 폭발적인 게 아니라 밀도가 높았다고 해야 할까요? 드라마 <하이에나>가 끝나고 1년 여 만에 임한 작품이기도 하고 그동안 맡았던 역할들보다 비중이 커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바바라의 감정이 고조되는데 그 부분에 특히 중점을 두고 연습했죠. 사랑스러운 면모와 분노에 찬 면모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싶었거든요. 영화 <오 마이 고스트> 촬영까지 맞물려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얼마 전에 영화 촬영이 마무리 돼서 여유가 좀 생겼네요.

 

시간 여유가 생겨도 바쁘게 지내는 편이시죠? SNS에서 보면 ‘취미부자’더라고요. 뭔가 하나에 깊이 빠져들기보다 관심사를 다양하게 두는 편이에요. 요즘에는 집 꾸미기에 재미를 붙였어요. 꽃을 꽂아 두거나 하는 식으로 소소하게 꾸미고 있죠. 본가에서 독립한지 4년 정도 됐는데 초반에는 매일같이 가구 옮기면서 인테리어에 신경 썼어요. 그런데 지금은 작은 변화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예전부터 혼자 예쁘게 집 꾸미고 사는 게 로망이었거든요.

 

꿈이 소박했네요.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아무래도 ‘애프터스쿨’로 활동하면서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까 나만의 온전한 공간과 휴식을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바깥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데 집에서는 가급적 제 시간을 즐기고 싶어요.

 

어쩐지 취미가 대부분 혼자 사부작사부작하는 활동들이더라고요. 하하. 그러네요. 예쁜 색깔에 쉽게 마음을 빼앗겨서 꽃이나 옷, 그림에 흥미가 가요. 특히 그림 그리기는 저만의 색깔 놀이라 해야 할까요?(웃음) 나이 들수록 정적인 활동이 저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운동도 플라잉요가를 제일 선호하는 건가요? 저한테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해봤어요. 헬스, 필라테스, 수영 등등 많이 해봤는데 플라잉요가 할 때 제일 생기가 도는 기분이더라고요. 다른 운동에 비해 덜 힘들었거든요.(웃음) 가수 시절에 역동적인 춤을 춰서인지 지금은 몸에 부담감을 적게 주고 싶어요.

 

 

 

5년 전 연극 <서툰 사람들>에 도전하면서 “어떤 캐릭터에도 공감할 수 있도록 유연한 감정을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연기력을 쌓는 데 취미활동이 도움이 되나요? 아직 배우는 단계라서 연기에 어떤 것이 도움 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작품 속에서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맡은 캐릭터에 사람 이주연의 성향이나 감정이 일정 부분 묻어나죠. 때문에 저는 연기에 있어서 이것이 중요하게 작용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 그 연장선에서 보면 취미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주죠. ‘아, 난 이럴 때 즐거워지는구나’ 하고 나에 대해 하나 더 배우게 되거든요.

 

배우로 살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갈 기회가 훨씬 많아진 듯 보여요. 다행이죠. 예전에는 노래가 1위를 해야 한다,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된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어요. 스케줄 소화하기에 바빠 쫓기듯이 살았어요. 그런데 배우로서 혼자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스스로 고민할 시간이 많아졌어요. 해답은 결국 ‘내가 즐길 수 있는가’란 질문이 던져져야 얻어지더라고요.

 

7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대부분 조연으로 열연했잖아요. 꼭 필요한 역할들이었지만 조급함이 컸을 법도 한데 꾸준히 롱런해오고 있는 비결도 즐거움을 좇았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주·조연을 떠나 내가 흥미를 갖고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인지가 저한테는 큰 판단 기준이에요. 누구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만 보지 않잖아요. 등장인물마다 모두 제 몫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크게 연연하진 않아요. 아, 요즘 새로운 바람이 하나 생기긴 했어요. 그동안 연예인, 회사 CEO 같은 캐릭터를 주로 맡아서 의상이 화려했거든요. 이젠 겉모습이 아닌 깊은 내면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작품에서 옷 한 벌만 입어도 좋으니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긍정적이어서 가수 시절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커졌을 것 같아요.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전보다 많이 하고 있어요. 20대에는 슬프고 힘들어야 삶의 자양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괜히 센치한 척 해야 멋져 보일 것 같았고요.(웃음) 음악도 슬픈 노래만 들어서 매니저가 왜 그렇게 우울한 노래만 듣냐고 잔소리 하고 그랬죠. 지금은 예쁜 것만 보고, 좋은 감정만 느끼고 싶어요. 그래서 밝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며칠 전에 나를 위한 선물이라면서 업로드한 향수 사진을 봤어요.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소확행을 위해 새로 찾은 방법이겠네요? 맞아요.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소비를 했어요.보기에 예뻐서 사는 게 다였죠. 그런데 지금은 작은 물건 하나에도 괜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거 있죠?(웃음) 향수도 이번 연극과 영화준비에 열심히 임한 ‘셀프 칭찬’의 의미였어요. 갖고 싶었던 물건을 뜻깊은 순간에 사니까 만족감이 훨씬 크더라고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일상을 가꾸는 모습이 멋져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훗날 그리워질 과거라고 생각하면 현실에 그다지 불만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연기가 나한테 맞는 일인가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꿈꾸는 배우가 되어 돌이켜봤을 때 꼭 필요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거라 생각하니 금세 힘이 났죠. 안주하지 않을 수 있어서 지금의 위치가 재밌고 좋아요.

 

배우로 지내는 시간 속에서 농익은 건 연기력뿐만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한층 성숙해진 그녀에겐 요즘 의미 없는 시간이 한 순간도 없다. 스케줄 없는 공백기는 취미를 즐기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 현재는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으로 여긴다. 하루를 정해진 스케줄로 허무하게 흘려보냈던 20대에 비해 지금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줄 알게 된 덕분이다.

생각해보면 SNS를 통해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호감 있게 바라봤던 이유도 평범한 일상에 입힌 가치가 빛나 보여서였다.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취향을 존중하며 자신만의 시간 속에 사는 그녀는 여전히 읽고 싶은 페이지가 많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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