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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의 행복라이프
감동의 순간으로 가득한 길 위에서_ 황보라 2021년 5월호
 
감동의 순간으로 가득한 길 위에서_ 황보라

 

 

이웃나라 속담 중에 ‘가볍게 걷는 자가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걷기 마니아로 유명한 배우 황보라의 워킹라이프를 들여다보면 이 말의 진위가 확실히 가려진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 따라 잡념들이 흩어져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녀가 걷는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에디터 한재원 | 사진 이권호

 

배우 황보라(39)의 일주일은 방송스케줄을 제외하더라도 계획된 일들로 빽빽이 채워진다. 월요일은 등산, 화요일과 목요일은 필라테스, 수요일과 금요일은 골프. 매일 챙겨먹는 영양제처럼 그녀는 활발한 신체활동으로 꼬박꼬박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녀에게 특히 걷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만보기를 늘 손목에 찬 채 하루 1만 보를 채우고, 어딜 가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으며, 자동차로 이동할 때는 가급적 목적지에서 거리가 먼 주차장에 세워두고 걷기를 고집한다.

 

그녀는 자칭타칭 ‘걷기 마니아’로 불린다. 걷기에 대해서만큼은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는 그녀에게 집이 있는 서울 잠원동에서 경기도 하남까지 장장 네 시간, 또 행주대교까지 왕복 열 두 시간을 걷는 건 흔한 일이다. 2년 전에 하와이로 여행 갔을 때는 하루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꼬박 움직였고,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현지 걷기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8시간 20분 만에 42.195km를 완주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걷기는 어떤 의미이기에 무모하리만치 걷고 또 걷는 걸까?’

 

완연한 봄날씨여서 요즘 걷고 싶은 의욕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사실 전 겨울에 걷는 걸 제일 좋아해요. 공기가 차가울 때 몸속이 뜨거워지면 훨씬 짜릿하고 개운하거든요. 그래도 이 예쁜 계절이 아까워서 얼마 전에 지인들끼리 등산동호회를 만들었어요. 다이어트가 될 법도 한데 저희의 목적은 ‘하산주’여서 살이 오히려 좀 쪘어요.(웃음) 그래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죠.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와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의 행복을 포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걷기가 보라 씨에겐 몸매 관리 수단 이상의 의미인 듯 보인다.

 

다이어트 목적이라면 전 오히려 걸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웃음) 움직이고 나면 식욕이 더 왕성해지거든요. 대신 음식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와요. 아이스크림 한 입, 물 한 모금이 지친 몸에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지, 땀 흘리며 걸어보지 않고는 느끼지 못할 거예요. 예전에는 저도 무조건 차만 타고 다녔던 사람이라 그런 소중함을 잘 몰랐어요. 그러다 2013년 무렵에 허리디스크를 앓았는데 꾸준히 산책을 해보라는 병원의 권유로 하루 2,000보부터 걷기 시작했죠.

 


그 정도면 가볍게 움직이는 수준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깊이 빠지게 됐나.

 

여행을 도보로 즐기면서부터 걷기의 매력을 알았어요. 빠르게 지나갈 땐 못 봤던 현지의 소박한 일상 풍경이 눈에 들어오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외국여행가면 렌터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무조건 걸어 다녔어요. 특히 하와이를좋아하는데 한번 가면 보통 2주에서 한 달 정도 머물렀어요. 그 기간 동안 계속 걸으면서 구경한 거죠. 그렇게 점점 걷는 양이 많아지다가 2년 전에는 하루 10만 보에 도전했어요. 말이 10만 보지 하루 동안 채우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여의도보다 1.5배 넓은 카피올라니 공원을 열 바퀴, 알라모아나 공원을 스무 바퀴나 돈 건 극히 일부였죠. 그렇게 20시간 동안 걸으니 어찌나 힘들던지 걷기를 당분간 쉬어야겠단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걷는 아버지, 휠체어 탄 채 달리는 아저씨,
웨딩드레스랑 턱시도를 입고 손잡고 걷는 커플….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제가 딛고 있는 길 위에서 펼쳐지는 삶이 진정 아름답더라고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해준 특별한 버팀목은 무엇이었나.

 

옆에서 함께 걷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8만 보쯤 걸었을 때 하체에 감각이 없어지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왔어요. 그때 같이 걷던 친구들이 본인들도 힘들 텐데 뒤에서 제 등을 밀어주는 거예요. 그 때의 감동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내 편’이라는 든든함과 고마움에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목표를 이루고 나서 내 자신에 대한 만족감보다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기쁨이 훨씬 컸죠.

 

고된 경험 후에도 매일 1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걷기에 어떤 숨은 매력이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제가 가장 실감하는 걷기의 장점은 지금 이 순간에집중하게 해준다는 거예요. 제 성격이 정말 급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어주는 편이 못되는데 걷는 동안만큼은 아무리 긴 얘기에도 끝까지 귀 기울이게 돼요. 또 혼자 조용히 반신욕하면서도 잘 외워지지 않는 대본이 걸으면서 보면 그렇게 잘 외워지는 거 있죠? 구간마다 숨 차는 정도가 달라 다양한 호흡으로 연습할 수 있어 일석이조예요. 항상 어떤 행동을 하면서 대사를 하지, 가만히 앉아서 연기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대사 연습까지 하면 행인들이 많이 알아볼 텐데 불편하진 않나.

 

오히려 알아봐주시지 않으면 서운하던데요?(웃음) 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제겐 무엇보다 즐거운 힐링이에요. 걸으면서 마주치는 동네 분들한테 먼저 말을 걸기도 하는 걸요? 반려견이랑 산책 나온 분 보면 “어머, 강아지가 너무 예뻐요. 이름이 뭐에요?” 묻기도 하고 꼬맹이들을 보면 “뭐하고 놀고 있어?” 하면서 괜히 참견해요.(웃음) 길에서는 자연 풍경보다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저 사람은 항상 이 시간에 나오네’ ‘저 할머니는 어떤 삶을 사셨을까?’ 하며 마음속으로 궁금해 하죠.

 

붙임성 좋고 외향적인 성향이 연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주로 털털하고 유쾌한 역할을 맡아 친근감이 들었다. 공감 가는 현실적인 코믹 연기로 큰 획을 긋고싶은 꿈이 있어요.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해주신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죠. 요즘에는 등산객들이랑 ‘서로 찍어주기’하는 데 재미를 붙였어요.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저희도 찍어드릴게요”라고 부탁해서 찍은 사진을 제 SNS에 올리면 ‘이 사진 찍어드린 사람이에요. 너무 반가웠어요!’라는 메시지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럼 저도 반가워서 꼭 답장을 하고요. 그렇게 뜻밖의 인연이 생기면 일상에 색다른 이벤트가 열린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대인관계는 좁아지고 그만큼 생각과 감정이 얕아지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보라 씨의 인연은 점점 풍성해지니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기분일 것 같다. 짧은 인연이든, 깊은 인연이든 누군가의 삶이 제 마음을 울리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고 배우게 되요. 삶의 방향이 잡히면서 안정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휴먼다큐란 휴먼다큐는 다 챙겨보는데 길에서 마주하는 삶의 모습들은 차원이 다른 감동을 줘요. 하와이 마라톤에서도 다양한 감동의 순간들을 목격했어요.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걷는 아버지, 휠체어 탄 채 달리는 아저씨, 웨딩드레스랑 턱시도를 입고 손잡고 걷는 커플…. 드라마나영화가 아니라 제가 딛고 있는 길 위에서 펼쳐지는 삶이 진정 아름답더라고요. 그런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걷기를 멈추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처럼 인터뷰 스케줄로 바쁜 날에도 1만 보 걷기는 변함없나?

 

물론이죠. 인터뷰가 있어서 만보기를 두고 왔지만 저녁에 또 열심히 걸어봐야죠! 걸으면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나서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아, 힘들다. 다 걷고 뭐 먹지?’(웃음) 그러다 보면 어느새 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는지 잊어버려요. 그렇게 단순하게 사는 것도 좋잖아요.

 

 

 

 

혹시라도 산책길에 낯익은 배우가 먼저 친근하게 인사를 해온다면 그녀일 가능성이 높다. 짧은 만남에도 고스란히 느껴질 활력의 근원은 감사함으로 충만한 그녀의 마음이리라. 10만 보를 모두 걸은 후 녹초가 된 몸으로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타들어가는 목을 축여준 물 한 모금,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의 응원…. 길 위에서는 당연하게 여겨도 되는 것들이 한 가지도 없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그녀가 이 길엔 또 어떤 감사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표정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생생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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