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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보다 소중한 국방의 의무 2021년 5월호
 
하버드보다 소중한 국방의 의무

초등학교 졸업 후 조기유학을 떠나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부를 졸업한 나는 현재 하버드로스쿨 입학을 유예하고 돌아와 강원도에서 현역 육군 일병으로 군복무 중이다. 내가 주로 학창 시절을 보낸 미국에서는 국민들이 군인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병원이나 구청 같은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극장이나 카페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참전용사를 만나면 시민들이 먼저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말로 고마움을 전한다.
군인들을 바라보는 호의적인 시선과 사회적 여론은 당연히 현역 및 제대군인을 위한 정책으로 이어진다. 그들에 대한 대우가 개선되고 실질적인 복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입대 시기를 고민하던 나도 자연스럽게 군 생활에 대한 동경과 늦지 않게 한국에 돌아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내가 처음 입대 결심을 알렸을 때 몇몇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꽤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내게 “축하한다!” “국방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아 고맙다”라고 말하는 대신 “왜 굳이?” 하며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국적이지만 미국영주권자인 내게 군 복무를 추천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오히려 입대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거나 심지어 만류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특히나 내 또래 젊은 남성에게는 군 복무가 명예롭거나 대단하다는 인식보다 학업이나 경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는 평소 동경하던 군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예정대로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년 4월, 10여 년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돌아왔을 때 공항 입국장에서 처음 나를 반겨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육군 장병이었다. ‘대한민국 육군’을 알리는 조끼를 입은 그들은 입국하는 내외국인들에게 코로나 관련 격리지침과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도와주고 영어, 중국어는 물론 베트남어와 러시아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대민봉사에 앞장서고 있었다. 순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해들은 한국의 군 생활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적재적소로 배치되어 봉사하는 군인들이 멋져 보였고 존경스러웠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공항을 오가는 국민들에게 위안과 신뢰를 주고, 외국인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선진 방역 체계의 첫 단추가 되어주는 그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도 ‘그래, 나도 저렇게 내가 가진 능력을 통해 더 유의미한 군 생활을 해야지!’라는 각오가 되살아났다.
오는 6월 나는 육군 범정부지원 사업의 일원으로 인천공항 검역소로 통역병 파견이 예정돼 있다. 1년 전 내가 동경했던 그들의 자리에 곧 설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맘이 설렌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직은 어느 일보다 더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외국 생활을 했지만 한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또 현역 군인으로 내가 자신 있고 잘할 수 있는 통역 업무를 통해 조금이나마 국가적 위기 극복에 이바지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내년 이맘때 쯤이면 나는 예비역 병장의 신분으로 미국에 돌아가 로스쿨 1학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즈음 다시 인천공항을 찾는 날에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도, 군 생활에 대한 걱정도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내 능력을 다해 헌신했다는 자부심, 그리고 인생 한 번뿐인 18개월의 군 생활에 대한 애정과 추억으로 가득 차 있기를 기대한다.

 

 

이재복

미국 하버드로스쿨 입학을 유예한 뒤 입대해 군복무 중인 육군 일병입니다. 현재 모 사단 참모부에서 근무하며 법조인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오는 6월 인천공항통역병 파견 근무에서도 대한민국 육군의 긍지와 자부심을 잊지 않고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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