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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옥수수 장수 할머니 2021년 5월호
 
여름날의 옥수수 장수 할머니

나뭇잎이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 되면 재작년 여름에 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날은 간식으로 찐 옥수수를 챙겨 강원도 화천으로 가족 나들이를 떠난 날이었다. 쪽빛으로 물든 파로호의 경치를 감상하며 호숫가를 달리다 잠깐 쉬어갈 겸 호숫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더니 이글거리는 햇빛에 차에서 내리기도 겁이 났다. 그 속에서 여든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그늘 한 점 없는잡초 더미에 앉아 옥수수를 팔고 계셨다.
새하얀 머리를 쪽지고, 흰 저고리에 월남바지를 입고 계신 행색이 꼭 오래 전 외할머니 모습 같아 마음이 쓰였다. 집에서 가져온 옥수수도 그대로였지만 차마 그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이렇게 더운데 나오셨어요? 옥수수 얼마에요?” “그러게 하나 좀 팔아줘요. 한 봉지에 3천 원이요.”
옥수수 두 봉지를 사서 돌아서는데 아무래도 할머니가 걱정되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날이 너무 뜨거우니 그만 파시고 들어가시라고 하자 돌아온 할머니의 대답이 다시 내 발길을 붙잡았다. “얼른 가셔요. 지는 이거 다 팔아야 들어가요. 이놈 다 팔아 아들 약값에 보태야 해요.” 할머니의 뜨거운 한숨에서 그동안 아들 병수발하며 살아온 고달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차량 한 대 보이지 않는 주차장에서는 밤을 새도 다 팔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일곱 봉지를 추가로 받아들고 나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거스름돈은 넣어두시라 하고 차에 올라탔는데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다가와 배웅을 해주셨다. “참말로 고마워요. 안녕히 잘 가세요!”
오늘도 할머니는 인적 드문 길가에서 옥수수를 팔고 계실까? 아들의 병은 다 나았을까?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마다 약값을 더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박은국

경기도 하남에서 반도체 장비 부품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가입니다. 회사 옥상에서 정원을 가꾸고 클라리넷, 키보드, 일렉 기타 등 다양한 악기 연주로 세월을 낚는 행복한 취미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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