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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타투이스트’의 행복한 나날 2021년 6월호
 
‘의사 타투이스트’의 행복한 나날

 

 

에디터 이종원 | 사진 이권호

 

 

 

 

“성형수술과 타투 중 더 애착이 가는 건 아무래도 타투 쪽이에요. 의료행위보단 확실히 예술행위가 더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거든요!

 

34년차 성형외과 의사이자 23년차 타투이스트인 조명신(58) 원장의 명쾌한 답변 앞에선 굳이 ‘왜?’라는 질문에 오래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의 삶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 명동에서 성형외과 의원을 운영 중인 개업의가 쉰 살이 넘어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진학하고, 또 난데없이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 된 ‘과달카날 전쟁사’에 빠져 지내는 이유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와 계속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전후의 인과관계가 소설보다 더 흥미롭다.

 

“오래 전에 문신을 지우러온 환자의 장미꽃 문신이 너무 예뻐 문신기술자를 직접 찾아가 배웠던 게 ‘타투하는 의사’로 알려진 계기가 됐지요. 현재 국내엔 2만 여명의 타투이스트가 활동 중입니다. 그 중 열 명도 되지 않는 의사면허 소지자이고, 남들과 다른 이력 덕분에 방송(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출연까지 하게 됐네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의사가 되어 ‘쥐 없는 집’에 사는 게 어릴 적 꿈이었다는 그는 성형외과 의사가 된 덕분에 눈에 보이지 않던 타인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문신을 지우기 위해, 혹은 새기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은 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어떤 이들에겐 타투가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니라 상처를 가리는 최선의 해결책이란 걸 수긍하게 됐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 타투뿐 아니라 화상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상처, 자해흔을 비롯해 얼굴에 생긴 흉터나 백반증 등 남들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가리는 ‘메디컬 타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 의원은 이제 쌍꺼풀 같은 성형 고객이 20%라면 타투 손님이 80%를 차지하고 있어요. 저 또한 타투가 여전히 흥미로워요. 고객이 원하는 새롭고 예술성 있는 도안을 개발하기 위해 미술도 배우고, 타투에 대한 책도 쓰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어요.

 

조 원장에게 타투는 부업이 아니라 제2의 직업이다. 성형에 비하면 타투는 하면 할수록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되는 분야라 더 애착이 간다. 똑같은 도안이나 도구, 잉크로 작업을 해도 피부색, 두께, 부위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몇 시간씩 걸리는 고난이도 작업을 끝낸 뒤에는 예술가라도 된 듯 남다른 성취와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행복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조 원장이 주목받는 건 성형외과 의사라는 이력이 아니라 타투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인 타투에 관한 노하우를 시술이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뒤로 그는 꾸준한 재능기부를 통해 치매노인 실종방지를 위해 전화번호를 새겨주거나, 근무 중 부상을 당한 경찰관, 소방관들을 위한 무료 타투서비스를 자청하는 등 타투에 대한 세간의 편견과 선입견을 개선시키고 있다.

 

“재작년엔 경찰관, 작년엔 소방관들에게 시술을 해드렸고 올해는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 구급차 기사님을 대상으로 타투 선물을 해드리고 있어요. 작년 한 해 100여 명의 소방관들에게 타투 시술을 해드렸는데 화상 때문에 여름에도 긴 옷을 입던 그분들이 만족해하며 돌아가는 걸 보면서 새삼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갖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투 덕분에 타인의 상처까지 헤아리는 의사가 되면서 그의 삶은 훨씬 가벼워졌다. 그 흔한 운전면허도 따지 않고 지금껏 복잡한 출퇴근길에 승용차 대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유를 그는 “좋은 차를 갖고 있으면 그만큼 걱정이 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욕심을 버리면 걱정할 일도 없을까? 의사도 되고, 타투이스트도 되어 어릴 때 꿈꾸던 ‘쥐 없고, 뜨거운 물 잘 나오는 집’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이냐고 반문하는 그에게 ‘왜?’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두 개의 직업을 가진 덕분에 두 배의 보람을 찾게 된 그는 이제 받은 만큼 세상에 돌려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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