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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
바다로 향한 안식처 2021년 6월호
 
바다로 향한 안식처

 

 

바다를 가리지 않으며 바닷바람에 견딜만한 집이어야 할 것. 쉽지 않은 과제를 해결하고 나자 어머니의 안온한 품처럼 제주의 자연과 사람을 모두 품어 안은 안식처가 완성되었다.

 

임형남 · 노은주(건축가) | 사진 변종석·홍석규

 

 

바다색이 아주 아름다운 김녕 바닷가에 제주도의 풍광을 그대로 담은 집을 하나 지었다. 집의 이름은 ‘까사 가이아’로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이다. 또한 ‘만물의 어머니’이자 ‘신들의 어머니’로 ‘창조의 어머니 신’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의 모태인 대지를 상징하는 이름을 집에 붙인 이유는 이 집의 설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지로부터 비롯되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방금 화산의 분출이 끝난 듯 여기저기 화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제주도는 모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땅이다. 검은 흙과 코발트색 바다, 그리고 강인하게 바다를 일구며 살아가는 해녀들이 고유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김녕 읍내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푹 꺼진 땅이 하나 있는데, 그 땅은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언덕이 느릿하게 시작하며 봉긋하게 솟은 오름으로 이어진다.

 

처음 땅을 찾아가 보았을 때, 집 지을 땅과 도로를 사이에 둔야트막한 언덕에 작은 담이 둘러져있고, 나무가 한 그루 껑충하니 서있는 곳이 보였다. 궁금해져서 앞으로 가보니 담 안에 작은 무덤이 하나 있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이 유명한 발레리의 시가 연상되는 작은 해변의 묘지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김녕 바다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누워있는 무덤의 주인이 무척 부러워졌다. 코발트색의 바다와 느리게 왔다갔다 하는 배를 바라보며 낮잠 자듯 누워 있는 그곳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가 흔히 묘지를 볼 때 느끼는 거리낌보다 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던 이유는 무얼까 생각해봤다. 무덤이나 집은 영계와 속계로 나뉘지만 사실 그 주목적은 ‘안식’이 아니겠는가. 김녕 주변은 그런 평온함을 주는 땅이었다.

 

 

 

욕심 없는 바람

 

 

한참을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실눈을 뜨고 휴식하는 기분으로 땅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바다에 바로 붙어있는 평온한 땅 북쪽으로는 김녕항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고양이가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둥그스름한 오름, 괴살메(묘산봉)가 배경이 된다. 집 지을 터는 마치 누워 있던 괴살메의 고양이가 천천히 일어나 들을 건너고 2차선 도로를 넘어, 바다에 발을 담그기 전 잠시 쉬는 곳 같았다. 말하자면 괴살메와 부드러운 옥색 바다 사이에 슬며시 끼어든 완충지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만일 집을 높게 짓는다면, 도로를 지날 때 자칫 바다를 가릴 수도 있는 위치였다.

 

건축주는 이 땅을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제주 토박이 부부였다. 그들과 처음부터 의견이 일치했던 부분은, 제주 바닷가의 전망 좋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형태와 색채를 집어넣은 집은 결코 짓지 말자는 것이었다. 단지 원하는 것은 가급적 바다가 훤히 보이는 욕실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만나봤던 건축주의 요구사항 중에서 가장 가짓수가 적고 단순한 바람이었다. 땅에 대해 해석하고 집을 구성하는 중요한 과정을 모두 맡겨준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열심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다를 가리지 않으며 바닷바람에 견딜만한 집을,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제주도의 돌처럼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었다. 일단 처음엔 두 층으로 고려했던 집의 규모를 줄이고 단층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지붕도 최대한 도로면보다 낮게 얹어 바다로 향하는 시선을 막아서지 않도록 높이를 조절했다. 이왕이면 그 자리에 옛날부터 있었던 오랜 집처럼 보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건너편 김녕항에서 볼 때 오름을 닮은 모양새처럼 보이도록 지붕 선을 완만하고 둥그스름하게 조정했다.

 

주변 색과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고려해 바다를 향한 외벽에는 검은색 제주석을 붙였다. 반대로 도로에서 바다를 볼 때는 부드러운 곡선 가벽에서 이어지는 흰 벽과, 바다의 연장처럼 보이는 쪽빛 지붕이 날개를 들며 경쾌하게 이어지도록 했다. 땅의 모양이 올록볼록한 비정형이라 건물의 평면은 그 외곽선을 그대로 반영해서 모양을 잡았다. 언뜻 보면 심장 모양처럼 생긴 땅의 곡선을 따라 평면을 그리고 지붕을 얹었더니 부드러운 곡선의 입술모양이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봐야만 알 수 있는 그 형상은 마치 무수한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제주도의 강인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용천수와 올레길이 이어지는 탁월한 전망 때문에 주변에서는 카페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이 집은 오롯이 거주의 용도로 사용된다. 동쪽 현관으로 들어와 일상의 휴식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맞은편 서쪽 끝에 주인이 그토록 원했던, 바다가 보이는 널찍한 욕실이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공간은 방 두개와 거실, 주방 등으로 비교적 단출하다. 모두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란히 이어지고, 테라스를 통해 바다에 면한 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 있다.

 

벽도 천장도 완만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내부 공간은 어머니의 안온한 품처럼 포근하고, 바다와 오름 사이를 넘나들며 오가는 햇빛과 바람과 바다라는 제주의 자연으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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