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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Letter
펜팔 엄마와 메신저 아들 2021년 6월호
 
펜팔 엄마와 메신저 아들

 

요즘 들어 고등학생 아들이 방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는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해서 들여다보면 얼른 방에서 나가 달라는 의사표시만 할 뿐이다. 아들의 친구를 길에서 만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반 친구가 여학생을 소개해줬는데 아직 만난 적이 없는 둘이서 온라인 메신저로 연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슬그머니 내 고교시절, 펜팔에 얽힌 추억 하나가 생각이 났다. 상대는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이었는데 우리는 밤늦도록 쓴 감성 가득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어느 날 상대 남학생에게서 만나자는 편지가 왔다. 글로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제안이 반갑지 않았지만 예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망설임 끝에 시내 어느 상가 앞에서 만나 근처 중국집으로 들어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마주하고 앉았다.

 

하지만 시골에서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온 나는 멀미 때문에 입맛이 통 없었다. 남학생도 음식을 입에 넣고 한참을 우물거리며 힘들게 씹는 듯했다.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자 그가 편지에서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그 얘기마저 바닥을 드러내자 다시 조용한 식사가 진행되었다.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와 나는 편지 속에서 각자의 마음에 드는 허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허상과 감정을 교류해 왔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 알림음이 울렸다. ‘이거 마시고 힘내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들이 보낸 비타민음료 쿠폰이었다. ‘그래, 이 맛에 아들 키우는 거지!’ 21세기 메신저 아들은 이렇게 오늘도 아날로그 엄마를 행복하게 한다.

 

 

박세연

경남 김해에서 건축회사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워킹맘입니다. 작년 가을부터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며 엄마, 주부, 직장인으로서 그 누구 못지않게 야무지고 우아한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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