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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미소 짓는 할미꽃 2021년 6월호
 
나를 향해 미소 짓는 할미꽃

 

경북 상주시니어클럽에 ‘노노케어’라는 노인일자리 사업 담당자로 입사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업무에 어느정도 익숙해졌지만 어렵사리 얻은 직장인만큼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초심은 150여 명의 어르신들을 관리해야 하는 업무 앞에서 번번이 흔들린다. 종일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고 끝없이 밀려드는 서류들을 눈 빠지게 검토하다보면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회의감에 젖어든다.

 

어르신들이 노노케어 사업을 통해 벌 수 있는 돈은 하루 3시간, 한 달에 열흘을 활동했을 경우 약 27만 원이 지급된다. 젊은이에게는 한 달 용돈도 되지 않는 소액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귀한 돈이라 심사에서 탈락한 어르신들이 안타까움을 표출하실 때가 많다. 전화를 붙들고 쏟아내는 원망과 한탄을 장시간 들어야 하고, 당장 시청이나 세무서로 찾아가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막아야 하니 난 매일이 전쟁이다. 그나마 전화 응대는 좀 나은 편이다. 사무실로 찾아와 “형편이 어려우니 일 좀 하게 해줘요”라며 무작정 생떼를 쓰시는 어르신들은 정말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물론 탈락하신 어르신들만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선정요건을 충족해 실제로 경제활동을 하게 된 어르신들을 관리하는 것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자라 문맹자가 많다보니 활동일지를 쓰는 데 애를 먹는다. 일지는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대신 작성해줄 수도 없는 노릇. 연필로 글자를 써놓고 천천히 따라 그리시라고 해도 매번 틀리게 작성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이렇게 어르신들과 실랑이를 벌이다보면 친구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 보낼 틈도 없이 하루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택한 직업이지만 보람보다는 피곤에 익숙해져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얼마 전 일자리를 얻어 활동을 시작하신 현이(가명)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제 날짜에 모여 체온 체크하고 힘차게 일을 시작합니다. 정신없는 노인들과 일하시느라 늘 고생이 많습니다.’ 평범한 안부 인사였지만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여러 개의 하트에 경직돼 있던 내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격무에 시달리며 ‘과연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인 걸까’ 하고 수십 번씩 물었던 질문의 답을 문자메시지에 실려 도착한 사진 한 장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사진 속 다섯 명의 어르신들은 80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가 여고생처럼 풋풋했다. 반갑고 감사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자신들이 나를 힘들게 해 혹여 내가 직장을 그만둘까봐 염려되셨다며 힘들어도 꿋꿋이 버티면 꼭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위로가 돌아왔다. 순간, 시야를 뿌옇게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힘든 만큼 어르신들과 정을 나누는 순간도 많았던 나날이었다.

 

사무실을 찾아오신 어르신의 애달픈 사연을 듣다가 ‘내가 능력만 된다면 당장 도와드리고 싶은데…’ 하고 연민이 생긴 적도 많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엉뚱한 대답을 하시는 통에 사무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된 순간도 있었다. 그동안 불평불만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즐거운 시간들을 사진 속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되찾아준 셈이었다.

 

이후로도 어머니는 종종 일상풍경을 사진 찍어 보내주신다. 그 중 아파트 화단에 핀 할미꽃 사진이 마음 깊숙이 들어온다. 겸손하고 고운 꽃이 꼭 어머니가 오늘 하루도 기운 내라며 나를 보고 배시시 웃음 짓는 표정 같다.

 

 

 

서혜린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맑은 상주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불만사항을 얘기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힘들 때도 많지만 동네 주민들과 정이 들어 투박한 사투리 한마디에서도 따스한 정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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