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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전북 무주
황홀한 꽃불 쏟아지는 여름밤 2021년 7월호
 
황홀한 꽃불 쏟아지는 여름밤

 

 

박도순

 

무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현재 무주군 안성면 공진보건진료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고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동네 사람들과의 소박한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주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무주에서 살고 있으니 무주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간호사가 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보건진료소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며 보낸 세월이 32년이나 되었지만 지금도 무주는 내게 나날이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안겨주는 곳이다.

 

 

무주를 가장 무주답게, 시(詩)의 정취로 표현할 말은 뭐가 있을까 고민할 때마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딱 한 마디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철지난 광고 문구가 떠오르곤 한다. 무주, 하면 떠오르는 게 뭔지 도시 지인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하나같이 ‘구천동, 덕유산, 반딧불축제’를 벗어나지 못하니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지인들에게 무주군 안성면 산자락 양지바른 언덕에 길게 늘어뜨린 고원이 있다는 걸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곤 한다. 신선이 무릎에 거문고를 안고 풍류를 즐기는 형상을 한 금평(琴坪)마을 ‘두문리(斗文里) 말그리’는 해마다 여름이면 요즘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로 손색이 없다.

 

 

두문리는 ‘됫(升)글로 배워 말(斗)글로 풀고, 말글로 배워 섬글로 풀라’는 말이 전해오는 곳이다. 말그리 마을이라 불린 것도 예로부터 글 읽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책 읽는 소리가 담장을 넘었다니 상상만 해도 운치가 넘치지 않는가! 끊이지 않는 향학열 덕분에 훌륭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걸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큰 자랑으로 여긴다.
이곳에선 여름마다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황홀한 불놀이가 펼쳐진다. 맨 처음, 동네 서동(書童)들에 의해 시작됐다는 이 불놀이는 글공부에 지친 학동들이 음력 4월, 요즘으로 치면 중간고사쯤 되는 시험을 마친 뒤 책거리로 즐기던 놀이였다.

 

 

불 봉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잘 말린 뽕나무 숯을 빻아야 한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작업 과정은 옛날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 한여름, ‘낙화놀이 전승관’에 모인 어르신들이 숯가루가 바람에 날릴까 봐 부채질도 못하고 열심히 숯을 빻는다. 옆에서 잠깐 지켜봐도 얼마나 무덥고 고된 작업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을 그 옛날에는 학동들이 모두 했을까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아이들은 숯가루에 사금파리를 넣는 일에 동네 어른이나 머슴들의 도움을 적잖이 받지 않았을까? 쑥 심지를 한지에 돌돌 말아 만드는 작업도 모두 함께 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은 숯검정으로 변하고, 마주 보고 웃으며 박수도 쳤을 것이다.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마주 앉아 불 봉을 만드는 아름답고 숭고한 공동체적 풍경을 떠올리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무주는 구천동이나 덕유산 같은 유명 관광지 외에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정겨운 풍경들로 가득한 동네다.

 

어느 해 여름, 나는 중학교 시절 은사님을 뵐 겸 낙화놀이가 벌어진다는 두문리를 찾아갔다. 저녁 무렵, 산기슭 방죽 위로 올라가니 물을 가로 질러 새끼줄을 걸쳐 맨 곳이 나왔다. 어르신들이 한자(尺) 반 간격으로 낙화 봉을 달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전히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한바탕 마당놀이가 막을 내리고, 밤의 적막이 주위를 감쌌다. 간간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방죽가에 모여든 사람들이 쏟아질 불을 기다리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철사줄에 매달린 낙화 봉이 일정한 간격으로 행진해 방죽 끝으로 나아갔다.
‘파박파박, 타닥타닥!’ 불줄을 타고 작은 불꽃들이 별빛처럼 터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깨고 저 멀리서부터 불꽃가루가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간지러운 폭음에 누구는 탄성으로, 누구는 침묵으로 눈앞에 일렁이는 불을 마주했다. 타다닥, 소금 타는 소리가 났던가? 사금파리 타는 소리가 참 맑고도 애잔했다. 저수지 위로 장맛비처럼 흩뿌리며 쏟아지는 불꽃들, 하늘에서 내려오는 꽃불은 물속으로 반영되고 꽃가루 같은 티끌이 바람에 날렸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황홀한 합창이요, 불들의 군무였다. 크고 작은 불티가 나풀거리며 내려오면 물속에서는 크고 작은 불티가 땅위로 마중나왔다. 어디가 상공이고, 어디가 수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같은 속도, 같은 모양의 불꽃들이 수면의 경계에 다다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태초에 신이 빛을 창조할 때 이렇게 지휘하지 않으셨을까? 숨 죽인 채 지켜보던 내 눈동자는 스테레오그램(streogram) 매직에 걸린 것처럼 초점이 풀어졌다.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감탄사를 내지르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불꽃은 점점 기세를 펼치고 불꼬리가 현란해졌다. 낙화놀이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불꽃 속으로 마음까지 빨려 들어가는 걸 느끼면서 나는 ‘아,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저리도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셨단 말인가’ 하고 감복하고야 말았다. 어느 동네 어르신의 목소리가 불꽃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외국 불꽃놀이는 싸가지 없이 하늘로 치솟지마는, 우리 동네 거시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게 월매나 겸손허신가. 외국 불꽃놀이는 총알로 쏘아져가꼬 사람을 놀래키드마는, 우리 동네 거시기는 아래로 타내려온 게 월매나 얌전시러븡가. 바람이라도 살살 불어보라지. 불티금 꽃방망이가 참말로 사람 환장한당게!”

 

 

삶이 지루한 자여, 불꽃 앞에 서보라!


두문리 불놀이는 일제강점기에 문화 말살정책으로 사라졌다가 15년쯤 전 무주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바라며 전통을 잇고자 했던 두문리 주민들과 무주 사람들의 자부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500년 넘게 이어진 마을 역사 앞에 글 읽는 소리, 불타는 소리, 됫글이 말글로, 말글이 섬글로 충만해지는 감동의 현장을 어찌 나만 보고 즐길 수 있겠는가.

 

 

누구라도 부르고 싶다. 삶에 지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작은 방죽 언덕에서 펼쳐지는 낙화놀이 한번쯤 직관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초록이 무성한 여름, 무주에 오거든 덕유산 정상에서 내려와 구천동 계곡에 발을 담그고, 어둠이 민박집 골목을 내리덮으면 살그머니 말그리로 건너오시라. 두문리 방죽 위에 꽃불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심장이 고동칠 것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꽃불 앞에 몸을 맡겨보면 사는 일이 다시 새로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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