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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경북 상주
여전히 낯설어서 좋은 우리 동네 2021년 7월호
 
여전히 낯설어서 좋은 우리 동네

 

 

 

박은정

 

2019년 여름 상주에 내려왔습니다. 상주에서의 놓치기 아까운 순간들을 기록해 《서울아가씨 화이팅》을 독립출판했습니다. 다 좋은데 서점 없는 것이 상주의 유일한 단점이라, ‘좋아하는서점’을 직접 오픈했습니다.

 

 

‘우리 동네를 자랑해주세요.’
얼마 전, 우연히 참가한 지역주민 모임에서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30여 년 넘게 살던 서울을 떠나 경북 상주에 온 지 이제 1년 10개월. 6개월간 경북지역 기업에서 일하며 업무 경험도 쌓고 지역과 상생하는 ‘청정경북 프로젝트’에 합격하면서부터다. 하지만 6개월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자꾸 궁금해했다. 낯선 상주는 괜찮은 건지, 대체 뭐가 좋아 계속 그곳에 머물고 있는 건지. “상주가 왜 좋아?” “계속 상주에서 살 거야?”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질문들이었다. 서울에 살 때는 누구도 서울이 왜 좋은지, 계속 살 건지 딱히 묻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나는 꽤 자주 상주의 좋은 점을 생각해야 했고, ‘우리 동네 자랑’은 그래서 익숙하고도 자신 있는 주제였다.

 

 

상주보다 더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 지방 소도시에 살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내 자랑이 통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첫 번째, 우리 동네는 어디든 걸어서 다닌다. 출근길은 괴로운 건 줄 알고 살았다. 만원버스에 올라타 차들로 빼곡한 도로 위에서 매일매일 시간을 보내며 아니, 버리며 살았다. 회사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집에서 한 시간 전에는 나와야 했다. 하지만 상주는 걸어서 30분이면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다. 이웃도 일터도 가까이에 있어서 좋다.

 

 

두 번째, 우리 동네는 밤이 되면 어두워진다. 해가 지면 어두워지고 해가 뜨면 밝은 것이 당연한 건 줄 모르고 살았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 가득한 곳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밤늦게까지 놀았다. 상주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들이 많지 않아,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어둠과 함께 고요함이 찾아온다. 밤이 밤 같아서, 당연한 게 당연해서 좋다.
세 번째, 우리 동네는 가을에 감을 먹는다. 여름에는 여름 과일을 먹고 가을에는 가을 과일을 먹는 것이 당연한 건 줄 모르고 살았다. 서울에서는 바나나같이 제철도, 생산자도 알지 못하는 과일을 쉽게 먹으며 살았는데 상주에서 지내면서 여름 복숭아로 시작해 포도, 사과, 배, 감, 그리고 곶감까지 그때그때 상주에서 제일 많이 나는 과일 위주로 먹었다.

 

 

우리 동네는 계절과 자연과 가깝다. 그 전에는 마른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고, 빼곡하게 벼가 자라고, 잎이 누렇게 물들며 낱알이 익어가고, 쌀을 수확하고, 다시 맨 땅이 되고, 이렇게 생의 흐름이 담긴 시간이 계절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상주에 와서 초여름 물 댄 논이 ‘우유니 사막’만큼 예쁘다는 걸 알았다. 라일락 나무에 꽃이 피기 전, 망울이 어떤 모양인지 알게 되었다. 매화나무 가득했던 매화꽃이 지면 그다음 매실이 잔뜩 달린다는 걸 알았다. 감나무에도 배꼽같이 귀여운 감꽃이 가득 핀다는 걸 알았다.
이 글을 읽으며 어쩐지 마음이 몽글해졌다면, 아마 상주 또는 상주 같은 소도시에 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늘 곁에 있는 건 당연해서 특별하다 느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상주는 나에게, 여전히 낯설어서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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