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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
즐거운 놀이터가 되는 집 2021년 7월호
 
즐거운 놀이터가 되는 집

 

 

임형남 · 노은주(건축가) | 사진 진효숙

 

 

여행이라 하면 보통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상안 주택’에서는 집안을 거니는 일이 곧 여행이 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변하고, 공간마다 각기 다른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웃음 많은 부부에겐 집이 최고의 여행지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꿈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새로운 식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식구는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비를 막아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아주 친절하고 듬직한 동행이다. 결국 집이란, 거기 사는 사람과 비슷한 개성을 가지며 함께 나이를 먹으며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어떤 개념을 가지고 지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개념을 정한다는 것은 당호를 정하는 것이나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개념이라는 말은 좀 추상적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개념이란 집을 짓기 위한 여러 가지 단편적인 사실들과 요소들을 아우르는 큰 덮개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땅이 주는 여러 가지 정보들과 우리가 원하는 조각조각 흩어진 희망들, 그런 것들을 모으고 종합해서 하나의 개념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한가한 일요일 오후 무심히 틀었던 텔레비전의 오락프로가 우리를 웃게 하고, 어린아이나 강아지의 재롱이 우리를 웃게 하고, 가족의 사소한 실수나 농담이 우리를 웃게 한다. 그렇듯 피로를 잊게 하고, 생에 대한 강한 긍정을 불러일으키는, 크고 작은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유쾌한 집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행복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강원도 횡성에 지은 ‘상안 주택’은 그런 유쾌함과 즐거움을 개념으로 설계했다.
어느 날 눈가와 입 끝에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유쾌한 인상의 젊은 부부가 찾아와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짓는 집과는 약간 다른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자전거 하이킹과 캠핑을 좋아하는 그들은 마치 휴일에 캠핑을 가듯 즐길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재밌는 것을 함께 보고, 나무 그늘에 해먹을 달아 그 안에서 낮잠을 자며 쉬는 집. 일단 부엌에서는 누가 혼자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마주보며 함께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반려견 세 마리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고려해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영화 <건축학개론>의 옥상처럼, 방에서 바로 나가서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옥상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규모는 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작은 집과 놀이터 같은 즐거운 공간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부엌…. 요즘 건축주들은 많이 젊어졌고, 원하는 바가 무척 구체적이고 정확하다. 돌이켜보면 옛 살림집들도 비슷하다. 대부분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고 특수해로 지어진 곳이 많다. 특수해란 아파트처럼 보편적인 형태로 지어놓고 사람이 들어가 생활을 구겨 넣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가장 최적화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로 연결된 공간

 


도시를 벗어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이 고른 땅답게 집 지을 터는 내비게이션도, 휴대전화도 잠깐 길을 잃을 정도로 한적한 곳에 있었다. 국도를 달리다가 점점 좁아지는 길을 꺾어 들어가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오르면 갑자기 물을 가둬놓은 큰 저수지가 나온다. 해발로는 600m나 된다고 하는데 그런 고도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고, 다만 무척 깊이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를 할 때 보통은 방을 넣고 거실을 넣고 하다가 부엌을 적당한 위치에 넣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인데, 이 집은 우선 부엌부터 자리를 잡으며 시작했다. T자형 평면의 날개 부분에 현관을 두고, 집의 전면이 되는 튀어나온 부분에 부엌을 두었다. 그 한가운데에 싱크대와 식탁을 합친 커다란 테이블을 두자 요리를 준비하고 먹고 쉬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담기게 되었다. 아일랜드 테이블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면서 야채를 씻거나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싱크 볼을 두 개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그 끝에 좌식과 입식을 겸할 수 있는 식탁공간을 구성했다.
벽에는 세 방향으로 창문을 냈다. 가로로 긴 동쪽 창에는 화분이나 간단한 소품을 놓을 수 있고, 남쪽의 창은 평상을 연결하고 아랫집과 서로 교류하는 통로가 된다. 가장 탁 트인 전망을 향한 서쪽의 창은 마당으로 나가 외부공간으로 나갈 수 있는 창이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이웃이 보이고, 한편으로는 먼 자연이 보이는 다양한 풍경이 담긴 창들이다. 그 뒤로 화장실과 창고와 보일러실을 슬그머니 숨겨놓았다. 집에 들어와 움직이는 동선을 충분히 고려해서 세탁실과 욕실의 전실, 욕조 등의 배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욕실에는 큰 창을 두어 집 뒤편의 푸른 숲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내부는 결국 문이 없는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계단을 반 층씩 올라가며 거실이 나오고, 그 다음 침실이 나온다. 두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 옆으로 앉을 수 있는 단차가 있어서 거실 벽을 향해 영상을 투사하면 마치 극장 같은 공간이 된다. 각 공간은 높이가 다른 층으로 구분되고, 높이가 달라질 때마다 공간에서의 경험도 달라진다. 거실의 아랫부분 필로티는 그늘이 되고, 해먹도 걸 수 있는 야외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부엌 윗부분과 거실 윗부분에 자연스럽게 두 개의 옥상이 생겼다. 하나는 안주인이 원했던 옥상정원이고, 하나는 아래 저수지 쪽을 조망하며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작지만 평범하지 않은, 여행의 일부처럼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의 집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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