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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식탁
새콤달콤 여름의 맛 ‘매실’ 2021년 7월호
 
새콤달콤 여름의 맛 ‘매실’

 

 

하얀 물결의 매화꽃이 봄을 알렸다면, 꽃이 진 자리에 달린 초록빛 매실은 여름이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여름, 전남 순천 구랑실농원의 매실도 뜨거운 태양 아래 알알이 영글어가는 중이다.
 

 

에디터 김윤미 | 사진 이권호

 

 

각각의 계절을 맞이하는 풍경이 있다. 찬바람이 돌면 겨우내 먹을 김장 준비에 분주해지고,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면 봄기운 전해줄 봄나물을 집어들게 된다. 여름이 시작되는 이맘때면 집집마다 매실청을 담그느라 손이 바빠진다. 매실 반 설탕 반 섞어 재워놓은 유리통에는 올여름도 가족들이 시원하고 무탈하게 지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함께 담긴다.
여름을 건강하게 나려면 매실청이 필수다. 차가운 얼음물에 매실청 한 스푼 섞어 마시면 더위로 달아난 입맛이 돌아오고, 소화가 안 되거나 배탈이 났을 때도 걱정이 없다. 매실에 괜히 ‘초록빛 보약’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매실은 가족들의 상비약으로, 여름 음료로, 또 요리할 때 양념으로도 다채롭게 활용되는 식재료로 일찌감치 우리 조상들은 매실을 음식으로도 먹고 약으로도 섭취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매실은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애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며 근육과 맥박이 활기를 찾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매실은 우리나라에 약 2천 년 전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 연평균 기온이 높은 남쪽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특히 전남 광양과 순천, 경남 하동이 대표산지다.

전남 순천 구랑실 골짜기엔 올해도 제철을 맞은 매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중이다. 북동쪽으로는 비봉산(595.5m), 북서쪽에는 용계산(626.5m)을 비롯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구랑실은 원래 ‘구렁실’로 불렸다. ‘구렁’은 산골의 옛말로 구렁실이라는 말은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이다. 청정지역 구랑실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고 매실이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군 복무 시절을 빼곤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순천 토박이 박병주(44) 씨는 지명을 그대로 딴 구랑실농원에서 15년째 매실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구슬땀으로 마을 옆 산자락에 심은 500여 그루의 매실나무에도 어김없이 초록 결실이 맺혔다.
“매실밭 규모가 4천 평 정도 되는데, 만 평이 넘는 큰 농장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죠. 따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저에게는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요.”
사실 박 씨는 농부이기 이전에 엔지니어다. 현재 광양항에서 컨테이너 크레인을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매실농사를 시작하게 된 건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집 앞마당에서도 훤히 바라다 보이는 언덕 밭의 위치도 한몫했으리라.
“어느 날 앞마당에 나와 담배 한 대 피고 있는데 눈에 언덕 밭이 들어오더라고요. 부모님이 거기에 밤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밤이 돈도 잘 안되고, 힘들다보니 뭐 다른 걸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마침 회사 동료 중에 매실농사를 짓는 분이 있어 묘목을 구해 심었어요.”

 

‘양심농부’의 매실 사랑

 


남고, 앵숙, 고성, 천매, 오경 등 총 다섯 품종을 심었지만 초보 매실농부가 남고가 무엇인지, 앵숙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다. 그래서일까. 같은 매실이라도 품종에 따라 이듬해 가지를 뚫고 나온 잎의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는 게 마냥 새롭고 놀라웠다. 게다가 한 나무에 달린 매실의 모양도 각각 달랐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매실의 세계는 그를 순천 뿐 아니라 인근 광양, 하동의 매실협회 영농교본까지 다 찾아보며 공부에 열을 올리게 만들었다.
“저기 보라색 가지가 보이나요? 남고매실나무는 올해 올라온 가지가 보라색을 띠거든요. 우리 농장의 매실나무 절반이 남고인데, 남고매실은 햇볕에 많이 노출된 부분이 붉어지는 특성도 있어요. 청매실이 따로 있고, 홍매실이 따로 있는 걸로 오해하는 분이 많은데 청매실은 단순히 매실의 색을 강조한 대명사로 품종 이름은 아니에요.”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러운 초록이 일렁이는 매실나무 사이사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각의 품종에 대해 설명해 주는 박 씨. 그런 애정과 열의가 없었다면 아마 힘든 농사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수확철이 되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업무 특성상 6일에 한 번은 24시간 근무를 서게 되는데 그런 날에도 쪽잠을 자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실밭으로 향한다. 사정을 알 리 없는 매실은 주인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농부의 삶은 전적으로 자연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그날그날 따야 할 수확량이 있기에 잠깐의 게으름도 피울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박 씨는 휴가를 6, 7월에 몰아서 다 쓴다. 가족들도 전부 동원된다. 전날 아침 9시부터 만 하루 근무를 마치고 숨 돌릴 틈 없이 밭으로 나간 그를 매실 따기에 한창인 어머니, 아내, 동생이 맞이한다.
“사람을 쓰면 인건비로 다 나가고 남는 게 없어요. 매실농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세가 괜찮았는데 요즘은 매실 가격이 좋지 않아서 되도록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직접 하고 있어요. 건축비용이 천만 원이 넘게 든다는 선별장도 제가 자재를 구입해 지어서 650만 원 밖에 안 들었어요. 농기계가 고장 나도 제 손으로 고쳐요. 처음엔 수리해주시는 분을 불렀는데 저도 엔지니어라 어깨너머로 한 번 보니까 원리를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그가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인터넷 직거래를 위해 개설한 블로그와 카페의 닉네임 ‘양심농부’에서 충분히 짐작해봄직하다. 농부의 숙명인 잡초와의 질긴 싸움에서도 더 편한 제초제를 쓰지 않고 예초기로 잡초를 일일이 베어낸다. 매실은 껍질째 먹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오전 내내 매실을 따고 난 뒤 평상에 앉아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 먹으면 한 번에 더위와 허기가 달아난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매실장아찌를 곁들이면 최고의 여름 한 끼다.

 

 

 

 

 

 

초록빛 치유의 시간

 


잡초 관리뿐 아니라 가지치기, 퇴비주기 등 바쁜 수확철이 아니더라도 박 씨는 일 년 내내 매실농부라는 직함을 내려놓을 수 없다. 뜻하는 바가 있어 시작했겠지만 농사일과 직장생활을 둘 다 해내야 한다는 게 힘에 부치지는 않을까?
“예전에는 제가 회사에 있을 때 아버지가 농사일을 좀 봐주셔서 수월했는데 3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전보다는 힘이 드네요. 몸은 수고스러워도 매실밭에 오면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회사 스트레스도, 갖가지 잡념도 다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초록빛 세상에 파묻혀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시원한 콩국수로 더위와 허기를 달래곤 한다. 매실농사를 지으면서 매실은 삼시 세끼 밥상에 오르고 있는데, 특히나 콩국수에 매실장아찌를 올려먹으면 고소한 콩국물과 새콤달콤한 매실장아찌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 때 곁들이면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김밥소로 활용하면 색다른 매실장아찌 김밥이 된다. 생선을 먹고 난 후 매실장아찌 하나 입에 넣으면 비린 맛이 사라진다. 또한 고추장에 버무리면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밥반찬이 된다.
여러모로 활용하기 좋은 매실장아찌는 만드는 법도 비교적 쉽다. 기호에 따라 설탕의 양을 조절해 넣어 용기에 담은 다음 10~15일 정도 숙성 후 매실을 건져내면 된다. 하지만 과육을 5, 6조각으로 자르고 일일이 씨를 발라내야 하는 손질 작업이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 때에도 박 씨네는 온 가족이 힘을 모은다.
가족들과 함께 정성으로 가꾼 매실나무이건만 올해는 작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월 생육기에 한창 햇볕을 쬐며 튼튼하게 자랐어야 하는데 흐린 날도 많았고 예년보다 기온이 낮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날 비가 오는 바람에 제법 많은 양의 매실이 낙과를 하였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매실을 보는 박 씨의 안색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태풍이나 가뭄으로 한 해 농사를 망쳤을지라도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농부의 사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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