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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먹는습관
점심도시락에 담긴 긍정의 기운 2021년 9월호
 
점심도시락에 담긴 긍정의 기운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홀연히 떠나고픈 맘을 담아 이렇게 읊조리곤 했다.


코로나19로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태국에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살던 5년을 합쳐 10년 가까이 프리랜서로 일해오던 내 삶에 균열이 생겼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나는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돈만 갉아먹을 수만은 없어. 커리어와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보자!’



밥상 위를 오가는 불만들


 

굳게 마음먹은 덕이었을까. 일자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해졌지만 돈벌이의 고충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웹디자인 팀장으로 들어간 회사는 의류 도소매 중소업체였는데 입사 첫날부터 선임들로부터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좋은 스펙으로 왜 이런 작은 회사에 왔어요?”라는 비아냥부터 회사에 대한 불만까지 여과 없이 귀로 흘러들어왔다.“여기가 어떤 회사냐면 말이죠….”


필터를 거치지 않은 거친 언어들은 낮 12시, 점심시간에 기세가 더 등등해졌다. 점심밥을 앞에 두고 다른 팀 직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회사에 대한 불만들은 아무래도 듣기가 거북했다. 설상가상으로 과도한 업무량과 우리 팀의 팀워크까지 구축해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매사에 긍정적인 나의 원래 성격대로라면 스스로를 격려하며 힘을 냈겠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정의 말들이 나를 좀먹는 것인지 자꾸 나쁜 생각만 들었다. ‘역시 직장생활은 무리였나? 그만둬야 하는 건가?’


우울한 마음으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기존 직원 중 무려 여섯 명이 퇴사를 했다. 고단한 직장생활에 백기를 들고 나가는 이들을 보면서 난 다시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처럼 비관적인 말과 분위기에 질 수는 없다는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내 상황을 모두 바꿀 수는 없겠지. 하지만 초심과 열정을 앗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는 있을 거야!’


그렇게 내 자신을 믿어보기로 결심한 후 나는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이들과의 대화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줄여나가도록 노력했다. 특히 부정적인 이야기가 난무하던 점심시간을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꾸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 귀에 유익한 소리가 들려오게 하고 진취적인 일들을 하며 내게 밝은 기운을 불어넣으리라 마음먹었다.



기분 좋은 소리로 채우는 한 시간


점심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도시락 싸기!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 점심도시락을 싸서 출근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아침 6시 30분은 눈 뜨기 힘든 시간이지만 행복한 점심시간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도시락을 준비한다. 닭가슴살과 야채들을 올리브유에 볶아주고 빨간 토마토도 넣어준다. 건강을 생각해 가급적 야채와 단백질을 빼놓지 않고 먹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장시간 일해야 하다 보니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배가 너무 고파 소량의 밥도 준비한다. 이 정도의 메뉴들을 도시락 통에 담고 나면 준비가 끝난다.


내 손으로 직접 싼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저절로 감사해지는 순간이다. 책상에 앉아 내가 만든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다보면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청산(靑山)’이 이곳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솔직히 밖에서 사먹는 음식들보다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건강 밥상이기에 하루 종일 더부룩함 없이 편하게 일할 수 있어 정말 좋다.


내 자리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으면서 하는 일은 다양하다. 어느 날은 블로그를 포스팅하고, 어느 날은 태국 음악을 듣거나 태국 드라마를 보며 외국어를 공부하며, 또 어느 날은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곤 한다. 처음에는 일부 직원들이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고 개인플레이를 한다며 나의 점심식사 습관을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백해무익한 말들로부터 안테나 스위치를 꺼버리고 나의 즐거운 점심식사 루틴을 고수 해오고 있다. 다른 직원들을 무시해서도, 싫어해서도 아니다. 그저 점심시간만큼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기분을 망치거나 일에 지장을 주는 걸 막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점심도시락이 지금은 기대 이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불만 가득한 말 대신 음악과 고요함이 흐르는 한 시간 동안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면 기분 좋게 오후 업무에 몰입할 힘을 얻는다. 정신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까지 지켜주는 것은 물론, 자기계발에도 힘쓸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나를 보는 직원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도시락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나다보니 출근 시간까지 앞당겨져 성실성을 인정 받았고, 건강한 루틴을 꾸준히 실천하는 모습에 나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봐준다. 덕분에 근무태도와 업무역량이 우수하다는 평가 아래, 예정된 3개월의 수습기간보다 훨씬 앞선 한 달 만에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주변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이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똑같이 반복되는 시간의 결을 조금만 바꿔도 그로 인해 기적 같은 결과를 마주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한 정신과 몸을 바탕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 작지만 소중한 기적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싶다.

 

 

김윤아

10년 여의 자유로운 삶을 청산하고 직장생활의 세계로 들어선 5개월 차 ‘중고신입’입니다. ‘윤토리’라는 별명으로 인플루언서, 블로거, 뷰티디렉터, 이모티콘 작가, 태국어통역사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부캐’로 살아가는 재미를 만끽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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