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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육아습관
자녀와 교감하는 부모의 손길 2021년 9월호
 
자녀와 교감하는 부모의 손길

 

 

 

1979년 어느 눈 내리던 겨울밤, 창호지로 만들어진 문풍지가 북풍한파에 울고 있었다. 이른 저녁을 먹은 우리는 배가 출출해지면 군고구마나 시원 달콤한 무를 먹으며 긴 밤을 지내곤 했다. 육십 촉 백열등이 비추는 온돌방에서 TV를 보다 잠들기 전이면 부모님께 등을 내밀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으로 네 남매의 맏이였던 나도 빨간 내복을 입고 동생들과 함께 순서를 정해 엄마 아빠의 손길을 기다렸다.

 

“엄마, 저부터 긁어주세요. 얼른요. 왼쪽 날갯죽지 있는 데요. 네네! 그 바로 아래요.”

 

대부분은 어머니 몫이었지만, 어쩌다가 아버지가 긁어주던 등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거칠고 까칠한 손길이지만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했었는지 모른다. 뜨끈뜨끈한 온돌 아랫목에서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만큼이나 달콤하고 아련한 기억이다. 마루까지 들이치던 거센 눈바람에도 무서움에 떨지 않고 평온하게 웃고 떠들며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등을 긁어주시던 부모님의 손길 덕분이 아니었을까.



오래된 습관 하나


매일 밤 따뜻한 온돌방에서 등을 내밀었던 어린 아이는 어느새 사남매의 아빠가 되었다. 첫째와 둘째는 올해 22살, 21살로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셋째는 16살로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막내는 11살로 아직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제법 의젓해진 모습이다.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정을 책임지며 바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이따금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1979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그때 그 손길을 그리워한다.

 

그런 내가 저녁을 먹은 뒤 반드시 빼놓지 않는 습관이 하나 있다. 아이가 잠들기 전 등을 긁어주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는 스킨십이다. 큰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해왔으니 얼추 15년 정도 된,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이제는 부모의 손길을 빌려 잠을 청하기 멋쩍은 나이가 된 첫째, 둘째, 셋째는 각자 잠자리에 들지만 초등학생인 막내 아이는 여전히 잠들기 전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자장가 비슷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의 팔과 다리를 스트레칭 시켜주고, 등과 어깨, 무릎을 주무르다 보면 아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부모의 스킨십이 아이의 성장판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책이나 대중매체에서 접하면서 시작한 습관이었다. 하지만 스킨십 자체가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거란 걸 나는 이미 어린 시절에 몸소 경험하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와의 스킨십은 내가 하루 중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다. 오르골 자장가의 선율이 내려앉은 방안. 어둠 속에서 ‘여기 긁어, 저기 주물러. 여기는 세게, 저기는 간지럽게.’ 까다롭게 주문하던 아이는 어느새 재잘재잘 이야기를 꺼낸다. 낮 동안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충이라도 하듯이 저녁 식탁에서도 말하지 못했던 화젯거리를 쏟아낸다. 같이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마음속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 의식이 무의식의 경계로 넘어가는 순간을 함께하는 무한한 신뢰의 시간. 아내와 나는 아이의 등과 마음을 긁어준다.

 

잠들기 직전 부모와 아이의 친밀한 접촉은 저녁기도 이상의 효과가 있다. 아이는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든다. 10여 분이 채 안 되어 아이의 숨결이 고르게 되면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뽀뽀하는 마지막 절차로 나의 저녁 리추얼은 마무리된다. 아이는 부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만족감에,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에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꿈의 나라로 빠져든다.



하루의 행복한 마무리


네 아이가 커나가는 밤마다 나는 아이들의 등을 긁어주었다. 물론 약속이나 모임 때문에 늦게 귀가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될 수 있으면 피곤하더라도 아이들과의 스킨십을 빼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제법 늦은 시간까지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나에게 등과 손을 내밀고 이야기보따리를 조잘조잘 풀었다. 아이의 작은 어깨를 주물러주고 간지러운 부분을 찾아 긁어주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평온한 얼굴로 꿈나라를 여행한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행복한 꿈을 꾸게 된다. 하루의 아주 작은 시간을 투자하는 소소한 행위였지만 나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바가 컸다. 나처럼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 시간들을 모두 기억하게 될까?

 

살다 보면 영혼의 언저리나 마음속 깊은 곳의 간지러운 부분을 누군가 긁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때가 있다. 등이나 허리의 닿지 않는 곳처럼 스스로의 노력이나 마음가짐으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얽힌 매듭들을 잘 풀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릴 적 자신의 등이 시원해지던 이 시간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아직은 아이가 나에게 등을 내준다는 사실이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 아이가 중학교 1, 2학년이 될 때까지는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습관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막내마저도 나의 품을 찾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더 큰 사랑으로 아이의 등을 긁어주고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싶다. 이 평화의 시간 속에서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행복의 기억을 이제는 아이들의 맘속에 담아주고 싶다.

 

 

배운기

네 아이들의 아빠로서 공무원으로 일하며 열심히 밥벌이 중입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부모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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