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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맡 오디오북 2021년 9월호
 
침대맡 오디오북

 

 

김선미(디자인 칼럼니스트)

 

 

자기 전 휴대폰을 보는 악습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작은 화면 속 링크를 타고 타고 들어가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기 일쑤. 저린 팔, 시린 눈, 가끔 졸다가 얼굴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했다는 자책감까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건 공교롭게도 또한 스마트폰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오디오북 애플리케이션.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 한 권 읽지 못했건만, 오디오북을 만난 이후 3일 만에 에세이 한 권을 완독, 아니 완청했다. 성우가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실감 났지만 특히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소설이나 에세이는 그 생명력이 남달랐다. 행간의 호흡조차 글의 일부 같았다. 종일 혹사당한 눈을 가만히 감고 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 ‘오디오북을 디지털 디톡스의 일종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시각 콘텐츠에서 청각 콘텐츠로의 이동은 하루의 끝을 다르게 만들어주었다. 묘한 안정감이라고 해야 할까. 오디오북이 주는 혜택은 실로 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의 2020년 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무려 267억 달러(약 29조 원)에 달했다. 미국 성인의 오디오북 이용률은 약 20%로 5명 중 1명이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 셈이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도 2020년 기준 200억~300억 원의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는 두 배 이상 늘어난 500억~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만 해도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시작으로 현재는 구독형 콘텐츠 서비스인 ‘윌라’와 ‘밀리의 서재’까지 애청 중이다. 최근 들어 가장 오래 머무르는 플랫폼은 오디오북에 특화되어 있는 윌라다. 요약본 대신 완독형 오디오북이 많다는 것, TTS(Text to Speech, 음성합성 시스템)의 어색함 없이 전문 성우나 저자가 낭독해준다는 점, 그리고 오디오북 외에 ‘TED’ 같은 지식 강연 콘텐츠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윌라에 정착한 이유다.


물론 오디오북을 즐겨 듣다 보니 슬금슬금 단점도 보인다. 딴생각을 하거나, 잠깐 내용을 놓치면 다시 그전 문장으로 정확하게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 요약본 또는 발췌형 오디오북의 경우 원작자의 의도 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출판업계에서 제기하는 월정액 구독에 따른 저자와 출판사 수익구조의 불투명성도 개선사항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오로 넘어간 독서는 이상하게 지구력이 강하다. 종이책 독서의 밀도와는 다르겠지만 한 권 한 권 완독 리스트가 늘어가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침대맡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 대신 윌라를 켜는 일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침대맡 오디오북, 이 경험 왠지 낯설지가 않다. 어린 시절 엄마가 읽어주던 어린이 명작 동화. 한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다가 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 몹시 닮았다. 어쩌면 오디오북의 태생은 지금보다 훨씬 이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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