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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뜻해지는 내 인생의 기념품 2021년 10월호
 
마음 따뜻해지는 내 인생의 기념품

 

“선생님, 제가 지갑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현금 3만 원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새해를 이틀 앞둔 어느 겨울날이었다. 은행 자동화기기 앞에서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취객이겠거니 생각해 대꾸를 피했더니, 남자는 꼭 갚겠다며 재차 부탁을 했다. 하는 수 없이 남자의 요청대로 수중에 있던 현금 3만 원과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 건네주었다. 남자에게도 전화번호를 요청했지만 전화번호 대신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 맡기는 모습이 사실은 영 미덥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시계 가격부터 확인해 보았다. ‘시계 값이 꽤 나갈 테니 돈을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새 제품마저도 빌려준 돈보다 적은 가격이라 실망스러웠다. 내일이면 입금해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봤지만 역시나 다음 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남자에게선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정말 그 돈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잊어버리려 해도 불쾌한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불우이웃에 기부했다고 여기고 빨리 잊어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내 방에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픈 마음 덕분에 갖게 된 물건들이 많이 있다. 버스터미널 입구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라며 구매를 부탁하는 여학생에겐 두 말 없이 만 원을 주고 목걸이 하나를 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직접 팔러 나온 걸로 보였던 그 여학생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 후로 종종 수제품을 들고 나와 파는 어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 둘 사준 공예품들이 이제 꽤 여러 개가 된다.
그땐 그저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구매했는데, 모아놓고 보니 오히려 내게 값진 기념품이 되었다. 설사 그들이 어려운 처지가 아니었다 해도 상관없다. 인생은 내가 믿는 대로, 내가 선택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니까.

 

강한훈

40대 초반의 회사원입니다.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는데 한 지역에서 30년 이상을 머물다 보니 곳곳에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주말에 동네 산책을 하며 그 추억들을 캐내 글로 표현하는 게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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