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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친필 원고_정채봉을 그리며
2010-04-15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 정채봉을 그리며

 

 "아주 죽은 게 아니라 우리 곁을 떠나갔을 뿐이다.

 한때 머물던 육체를 떠나 자신의 틀에 알맞은 새로운 몸을 갖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간 것이다."
 

사람의 죽음을 "제 할 일을 다 했을 때 낡은 옷을 벗어 버리듯 한쪽에 벗어 놓는다"고 표현하셨다.
그렇게 법정스님은 우리곁을 조용히 떠나가셨고,
우리가 떠나간 그를 그리워 하듯, 그 또한 한 사람을 그리워했다.
 

아래 원고는 법정스님이 정채봉님을 그리며 육필로 남기신 원고입니다.
 

그는 아주 죽은 게 아니라 우리 곁을 떠나갔을 뿐이다.
한때 머물던 육체를 떠나 자신의 틀에 알맞은 새로운 몸을 
 

가지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간 것이다.
이 몸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이 몸을 지닌 것이므로
이 몸이 제 할 일을 다 했을 때 낡은 옷을 벗어버리듯 한쪽에 벗어 놓는다.
그는 때가 되면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친지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면 평소 그의 모습과 무게가 새롭게 떠오른다.

정채봉님이 우리 곁은 훌쩍 떠나간 지 한 달이 가까워진 이제
그의 모습과 무게를 되새기며 슬퍼한다.
사람이 가고 나면 그에 대한 기억만 아프게 남는다.

지난 연말 마지막으로 그를 방문했을 때 환자는 기분이 좋아 일어나 앉아서
전에 없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말을 많이 했다. 그날은 다른 방문객이 없어 식구들뿐이었다.
불쑥 들어선 나를 보고 더 못 뵐 줄 알았더니 다시 뵙게 됐다면서 아주 반가와 했다.
그 전에 갔을 때는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어 내 마음도 울적했었다.

그날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그를 안아주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이것이 이생에서 우리 사이에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된 셈이다.
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뼈만 남아 앙상한 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몇 차례 길가에 차를 세워야 했다.
살아서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정채봉님을 처음 만난 것은 샘터에서였다.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그가 원고를 가지러 강 건너 다래헌에 왔었다.
그 시절에는 편집기자가 직접 원고를 받으러 왔었다.
그 무렵 다래헌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나는 지난겨울 우이동에 있는
그의 집 거실 사진틀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두 사람 다 펄펄하던 시절이었다.

불일암에서 지낼 때, 내 ‘산방한담’ 칼럼에 오자가 무려 대여섯 군데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실린 글에 오자가 나오면 몹시 불쾌하다.
독자에 대한 결례뿐 아니라 편집자의 성실성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랫절에 내려가 전화로 원고를 더 보내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편집 책임자인 그가 예고도 없이 불일암에 왔었다.
내 전화를 받고 예고도 없이 부랴부랴 밤차를 타고 사과하러 내려온 것이다.
훈육주임 앞에 선 학생처럼 풀이 죽어있는 그의 모습을 대하자 내 마음도 이내 누그러졌다.
함께 부엌에 들어가 아침을 지어 먹었다.
어느 해 이른 봄 그는 소포와 함께 다음 같은 사연을 보내 왔었다.


'스님 생신을 축하 올립니다.
오늘이 있어 저의 생도 의미를 지닐 수 있었기에 참으로 저에게도 뜻있는 날입니다.

저를 길러주신 할머니께서는 늘 절 구경을 다니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몰래 한푼 두푼 모으신 돈이 여비가 될 만하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제가 털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때의 제 속임수란 “할머니, 제가 이다음에 돈 벌어 절에 모시고 갈게요”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선 제 손으로 월급을 받아오기 훨씬 전에 저쪽 별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제가 첫 월급을 타던 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님 내복을 사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내의를 사드릴 어머님도 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스님의 생신에 (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 수없는 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짚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스님께서는 제 혼의 양식을 대 주신 분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한 번 축하 올립니다. 스님!'
 
- 정채봉 올림.

 
봄볕이 들어온 앞마루에 앉아 이 사연을 두 번 읽었다.
함께 부쳐온 봄 내의를 매만지면서 대숲머리로 울긋불긋
넘어다 보이는 앞산의 진달래에 묵묵히 눈길을 보냈다.

 

입산 출가 이래 나는 한 번도 내 생일을 기억한 적도 생일 축하를 받아 본적도 없다.
그것을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주민등록에 기재된 생년월일은 실재 출생일과 같지 않다.

재작년 가을 보내온 엽서에는 순천에 가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묘지가 산업도로로 편입되고 바람에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 같은 사연을 적고 있었다.


'기억에 없고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 유골로 이루어지게 되어 눈물을 좀 흘렸습니다.
저의 나이든 모습이 스무 살의 어머니로서 가슴 아파하실까 봐
머리에 검정물을 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이 사연을 읽고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묻힌 양지바른 그 발치에 지금 그도 누워 있다.
그가 홀로 되어 몹시 외롭고 안쓰럽게 여겨지던 시절,
책을 읽다가 눈에 띄고 구절이 있어 함께 음미하고 싶어 써 보낸 글
이 있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혼자 살 수밖에 없도록 길들어져 있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누구나 혼자라고 사실을 이해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고 이런 순간에 맞닥뜨릴 것에 대비하며 미리 연습하면서 살아간다...’

한 평생 외롭게 살아온 그가 그의 문학과 정서를 길러준 고향의 흙과 바닥,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서 쉬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하게 여기고 싶다.
이다음 생에는 부디 덜 외로운 집안에 태어나 튼튼한 몸으로 이생에 못 다한 일을 두루 이루기를
바라면서 명복을 빈다.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갔네
오고가는 그 나그네여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 원고 일부 중에서 [친필원고 전체보러가기] 
 

  
법정 스님                                                               정채봉 작가


고인이 된 정채봉님을 그리워하며 법정스님의 산문집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 남기신 육필원고 내용을 채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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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은 정채봉님의 <눈을 감고 보는 길>은 "그의 명 때움을 기리는 책이기도 하다." 라고 말씀하셨다.
<눈을 감고 보는 길>은 정채봉님의 마지막 에세이 집이다. 투병중에도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으며 삶에 대한 의지, 자기 성찰을 담은 에세이 집을 끝내 출간하신다.

법정스님은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도 출간하게된 이 책에 고맙고 기쁜마음에 사족을 붙인다고 하셨다.

<눈을 감고 보는 길> 책 머리에 법정스님의 글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문학과 삶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때가 되면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될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흰 구름 불어 오듯 소리없이 찾아와 우리곁을 맴돌고 있을 그들을 숨죽여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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