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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지은이 : 야마자키 나오코라   옮긴이 : 정인영    
분류 : 국내 | 단행본 | 문학.예술
책정보 : 무선, 224쪽
출간일 : 2020-03-20   가격 : 12,000원
ISBN : 978-89-464-2119-6 03830   CIP : 2020007541
도서구입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베란다는 세계의 축소판. 

그 작은 공간에 우주가 있다." 

 

식물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응시하며 

남들과 다른 삶을 소망하던 젊은 작가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20대 중반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강렬한 제목의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한 야마자키 나오코라. 솔직하고 대담한 문체로 젊은 층에 큰 인기를 얻었다. 아쿠타가와상 등 일본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며 문단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정작 그녀는 작가로서 항상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30대에 접어들어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유산 경험 등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한동안 작가로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힘들었던 시간을 좁은 베란다에서 화분 하나로 시작한 작은 정원(나오 가든)과 농장(나오 팜)을 가꾸며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식물을 기르며 그녀의 마음도 한 뼘씩 성장했다. 조급하고 초조한 일상에 서늘한 바람을 쐬고, 그늘진 마음에 따뜻한 볕을 쬐었다. 베란다 정원에서 드래곤프루트, 나팔꽃, 장미 등 다양한 식물을 기르며 갖가지 감정들을 통과한다. 생명 하나가 자신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설렘과 책임감, 하나의 식물에 주어진 공간처럼 누구에게나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장소’에 대해, 어느 날 태풍이 들이닥쳐 자신의 삶을 쓸어 가도 그 무력감 앞에 절망하지 않는 의연함, 혹은 태평함. 솔직하고 대담한 그녀의 소설만큼이나 나오코라 작가의 신선한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난다. 또한 식물의 성장과 함께 자연의 흐름과 섭리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작가로서 느끼는 사명감 등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얻으며 자신의 성장을 기록해나간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 작가로서 삶의 굴레가 되었던 ‘남들과 달라야 한다’,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 그리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역할과 자리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진진하고도 담백한 필체로 그려낸다. 

“무언가를 길러본 사람들은 안다. 식물이 가진 본래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인생 밭’도 자생의 힘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 (155쪽)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식물을 집에 들인다는 것, 온 우주가 식물 하나를 돌본다는 것.

 첫 식물은 드래곤프루트였다. 오키나와 여행지의 기념품 가게에서 발견한 시들시들한 식물을 기어코 사버렸다. 첫 선인장을 베란다 한구석에 둘 때만 해도 자신이 ‘가드너’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하나의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만돌린을 연주하고 영화를 보고 레스토랑에 가는 일처럼. 하지만 집에 식물을 들인다는 것은 그저 화분을 모으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날의 날씨를 살피고, 흙이 건조하지 않은지, 벌레가 끼지 않았는지 살피는 그 모든 과정을 의미했다. 바지런히 손을 움직여 식물의 상태를 살피면 식물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라났다. 풍성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 비옥한 흙이 식물을 돌봤다. 그녀는 그 속에서 작은 우주의 법칙을 발견한다. “식물의 성장 과정을 보고 있으면,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꽃잎이 하나둘 피는 모습을 보고, 나의 몸도 이렇게 진화했구나, 공감하게 된다. 베란다는 세계의 축소판. 그 작은 공간에 우주가 있다.” (4쪽)

아무리 애를 써도 글을 발표할 수 없었던 시기, 그녀는 베란다 테이블이나 작업실 책상 앞에 앉아 그저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멀리 솟은 철탑, 푸릇한 식물들…… 그렇게 흙 속의 작은 싹을 찾으며 나이를 먹어갔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녀가 베란다에서 배운 것은 어쩌면 ‘작아지는 법’일지도 모른다.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식물이 살아가는 것처럼, 겨울에는 한껏 몸을 웅크리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한다고. 그럴 때는 “겨울잠을 자면서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믿어보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언젠가 다시 생활할 수 있는 때가 온다”고 말이다.

야마자키 나오코라는 작가가 되기 위해 개인적인 일상부터 ‘작가다워’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소위 영감을 얻기 위해 2년마다 주거지를 바꾸고 그날 받은 돈은 작가가 되는 일에 온전히 써야 한다고 믿었다. ‘평범’해지지 않기 위해, 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그녀는,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을 깨닫기 시작했다. “매일 보는 경치가 내 ‘타이밍’과는 상관없이 바뀌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 안도감이 나를 구원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해내도 지구는 그저 계속 회전할 뿐이다. 배 속의 아이를 잃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다시 아이가 태어나도, 하던 일이 실패해도 꽃은 핀다.” (218쪽)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뻗으며 살게 된다”

베란다 식물을 보며 타인의 안부를 묻는 밤 


시들시들하던 드래곤프루트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쑴풍쑴풍’ 곁싹을 틔워내 다른 화분에 옮겨주었다. 이렇게 개체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어떤 믿음이 흔들림을 느꼈다. “그전까지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어떤 집단에 속해 있더라도 모두 다른 인격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도 넓게 보면 ‘하나의 유기체’일 가능성이 있지” 않은지. “잘라도 잘라도 또 자라는 드래곤프루트와 세상에 남은 미련 하나 없다는 듯 시들었다가도 매해 다시 싹 트는 새싹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품고 내뱉는 글이나 공기 같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음 세대에 남게 된다고.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뻗으며 살게 된다”고 말이다. 작가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단에 대한 사명감, 소명이 글의 곳곳에 묻어난다. 나오코라는 일본 사회가 ‘살기 힘든 곳’이라고 지적한다. ‘여성 작가’에게 거리낌 없이 ‘추녀’라고 말하는 대중들, 경쟁이라는 것을 끔찍이 여겼던 그녀가 문학상을 두고 다른 작품과 경쟁해야 했던 당혹스러운 순간들,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일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이 사회의 문제는 일부 정치인의 책임도, 일부 사람들의 문제도 아니다. 그녀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은 책임’을 느낀다. 이곳에 몸 붙이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해야 마땅한 일을 할 것을 다짐한다. 바로 글을 쓰는 일처럼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反戰)’ 같은 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당대의 풍속을 잔잔하게 그려낸 《세설》이라는 소설을 쓴 ‘다니자키 준이치로’처럼,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속에 세상에 대한 근심,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한 톨의 진심을 숨겨두고 싶다. 


싹이 트고 지는 일처럼 인생에도 생장 주기가 있다. 소설가로 등단하여 첫 싹을 틔우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다른 삶의 리듬이 생겨났다. “내 타이밍과 상관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내 리듬과 다른 리듬으로 성장해서 제멋대로 내 음악을 흐트러뜨린다.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오히려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 혼자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이 넘쳐나고 있으니 다양한 음악에 섞여들면 된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정원도, 강물도, 아이도 각자의 흐름으로 계속 변한다.”(218쪽)

파도처럼 출렁이는 관계 속에서 조금은 느슨하게 자신의 시간을 사는 법을 배운다. 더 이상 일년초는 키우지 않지만, 둘째 아이가 태어난 계절에 벚꽃을 피우는 나무를 심었다. 온 세상을 밀어 올릴 듯 꽃을 피우는 나무의 힘처럼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라고. 온전히 나의 시간을 위해 초록빛으로 자라던 나무가 이제 누군가를 위해 그 생명을 틔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정원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는다. 정원은 분명 우리를 기다려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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