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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는가?
2006-02-07 정희재작가 블로그 :     
주위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린 뒤 가장 많이 접한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래,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니?"

"정말이야?"

책 제목을 정하면서 자살골을 넣는 건 아닌가 걱정했고 부끄러웠는데 그게, 그랬다.

 

과연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는가?

(끄응) 그래요. -.-;

 

그러나 사랑은 한 번 익히고 나면 평생 잊지 않는다는

자전거타기나 은행원들이 돈을 부채처럼 펼치고 세는 기술(skill)과는 다르다.

사랑은 배우고 나서도 자주 넘어진다.

때때로 화가 나고 미워지고 원망스러워지는 건

사랑의 반대편에 선 감정들의 습이 너무 깊은 까닭이다.

사랑의 지폐다발은 얼마나 자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바닥으로 추락하던가. 무안시럽게.

 

 

인간은 왜 순례를 떠나는가. 

[중략]......

우리가 순례를 떠나는 것은 순례 길에 오른 그 순간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라고.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에서 뭔가를 배우고 깨우쳤더라도 사람은 배우고, 또 배우고, 행하고, 또 행해야 한다고. 살아가는 동안 완성은 끝이 없고, 배우고 익혀서 심장에 간직한 자비와 사랑일지라도 우리를 시험하는 순간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깨우쳐 얻지 않으면 결코 제 발로 다가오지 않는 냉정한 연인과 같다.

인간만이 뼈저린 참회를 하고, 인간만이 순례를 떠난다.

 

서문의 윗구절을 쓰면서 무엇보다 내 자신 가장 솔직한 고백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고백에 담긴 진심의 함량만큼 스스로 위안받았다.

달리 치유가 아니라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치유인 것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그(이)곳에서 사랑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바로 최선의 삶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제목은 미리 희망하는 묘비명이자 유언일 수 있겠다.

 

작년 여름, 글로 풀기 어려운 고비에 이르렀을 땐 울면서 108배, 300배, 500배를 하고

원고를 끝낸 가을날, 학교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기들을 보며 가슴벅차하던

그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사랑을 배우며, 그 시간들을 옹골지게 살았다.

누가 뭐래도, 어쨌든 살았다.

 

오랜 시간 내 가슴저림의 원인이었던 티벳친구 켈상을 위해 작은 등불 하나 피울 수 있어서 좋고,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살고 있는지 기억할 수 있어 행복하다.

 

책을 함께 만든 분들,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연결됐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몇몇 분들은 따로 연락을 드리지 않아도 아마도 빙긋이 웃으며 내 심장과 통하리라 믿는다.

 

아, 그리고 표지의 주인공,

카일라스 가는 길에 만났던 서부 티벳의 아름다운 유목민 아이에게도 고맙다.

투제체. 젤라제용(고마워. 또 만나)!

 

2006/02/03 18:49 정희재작가 블로그 중에서....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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