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따뜻한 자기 등에 반했잖아. 연애할 때 날 업고 함박웃음 짓던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우산 하나로 충분했던 우리였는데, 비 오는 날의 수채화랑 빨간 장미도, 너를 사랑한다던 모닝콜도, 자기가 선물해준 곰 인형도 이젠 사라졌지. 그때도 사랑이었지만 지금도 사랑이지, 우리? # 윤경과 문태의 일상 TV에서 드라마가 한창이다. 윤경 (호들갑스럽게 꺄아악 하고 소리 지...
광주전남 유일의 창작집필촌 ‘글을 낳는 집’의 다른 이름은 혀를 씻는 곳이란 뜻을 가진 세설원(洗舌園)이다. 집필촌의 안주인인 김선숙 씨는 몸에 좋은 약재와 나물, 직접 발효시킨 효소를 이용한 약선 요리로 작가들의 집필을 돕는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서 광주로 이어진 한적한 산길을 달리다 보면 해발 450m의 꾀꼬리봉이 아슴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완만하게 내려오던 ...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만물이 소생한다는 것은 인간이 보기에 아름답고 이로운 것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서랍에서 ‘그 물건’을 꺼낸다. 그것의 이름은 전기모기채.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나의 단짝이 되어 줄 물건이다.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을 해충으로 분류하여 살생하는 일이 과연 지구에도 이로운가에 대해서는 감히 할 말이 없지만 해마...
이 글을 청탁한 편집자는 몰랐을 것이다. 단짝을 주제로 글을 쓸 사람에게 친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그렇다 해서 내 삶에 단짝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 내 일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짝들의 만남으로 채워진다. 그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친구 없는 소설가의 일상을 들어보시라. 손수건 필히 지참! 나는 40대 중반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팔리지도 않는 책을 써...
남프랑스 작은 마을 르 뮈(Le Muy)에는 조각가 베르나르 브네의 아틀리에가 있다. 물과 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장소에서 그의 조각들은 아름답게 돋보였고, 그의 예술은 고스란히 스며들어 마을을 환하게 만들었다. 어떤 예술가는,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더라도 반드시 특정한 도시를 찾아가야 그 작품의 진가를 알게 된다. 자칭 타칭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곳은 많...
금요일 늦은 오후,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 가의 캠핑장에서 바비큐 그릴에 돼지고기 훈제를 올려놓고 안락의자에 앉아 무르익은 봄 햇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젊은 부부가 도착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힐링 캠핑일기 텐트는 택배 상자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차 트렁크에서 꺼내는 여러 장비도 포장을 뜯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
되돌아보면 기나긴 학창 시절을 버티게 한 건 단짝이었다. 마냥 두렵던 새 학기를 버티다 드디어 주파수가 맞는 친구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그 덕에 학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하굣길은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함께 키득대며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밀을 털어놓으며 서로 다르지 않다는 증거들에 안도했다. ‘단짝’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특정 얼굴들을 떠올리던 시기가 분명...
그래, 내가 그 녀석이랑 단짝이었지.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서 첫 짝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그 녀석 엄청나게 웃기잖아. 쉬는 시간마다 그 녀석이 하는 얘기에 어찌나 웃어댔는지, 수업 시간에도 녀석이 했던 얘기가 생각나 혼자 피식거리다가 선생님께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어. 한 번은 나한테 마술을 보여준다고 귀에다가 BB탄을 넣었는데 그게 안 빠지지 뭐야. 그런데 그걸...
단독주택으로 이사했을 땐 늦여름이었다. 지하엔 벽돌이 깔린 큰 마당이, 1층엔 작은 정원이, 3층엔 잔디가 깔린 옥상이 있는 회색 벽돌집이었다. 옥상에 흙을 돋워 나무도 심고, 플랜트 박스를 만들어 텃밭도 좀 가꿔봐야지 생각했다. 옥상에서 나무를 키우는 일은 땅에 심는 것과 달랐다. 물 먹은 흙은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려면 건물에 별도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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