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은 조용히 찾아오는 듯 보이지만 나는 해마다 격변의 새해를 마주한다. 새롭게 해야 할 일과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각기 다른 모양의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만으로 마흔하나를 맞이하는 올해는 변화의 물결이 더 높게 느껴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마흔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게 전해진다. 더 이상 어른 흉내를 내는 나이가 아니라 진지하게 삶을 책...
매일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린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뇌졸중으로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계신 어머니가 외로우실 것 같아 하루 한 번 아들 목소리라도 들려드리자는 결심으로 시작한 ‘전화 데이트’였다. 처음엔 어색했다. “오늘 뭐 하셨어요?”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뒤이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할 때가 많았다. 물이 바위를 뚫는 건 힘이 아니라 ...
나는 어려서부터 ‘몸치’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달리기를 하면 친구들의 뒤통수만 보며 달렸고, 체육시간에 실기 시험을 볼 때도 긴장감으로 몸이 더 굳어져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성인이 돼서도 스포츠나 활동적인 취미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다. 그보다는 주로 정적인 독서나 음악 감상을 즐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 영화감독 스오...
나는 법정 스님의 글을 정말 좋아한다. 고달팠던 회사 생활을 5년 넘게 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크고 작은 고난을 꿋꿋이 이겨냈던 것도 스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 덕분이다. 하지만 스님의 지혜로운 수필로도 치유되지 않던 시련이 있었다. 얼마 전에 내게 유산이라는 큰 불행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극심한 복통을 느껴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길, 차가운 간이침...
나는 매일 아침 식사로 통밀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는다. 오늘도 전날 먹다 남은 땅콩버터를 꺼내 갓 구운 빵에 발랐다. 그런데 한입 베어 먹은 순간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으아, 짜!” 알고 봤더니 내가 꺼낸 종지는 된장이 담긴 그릇이었다. 땅콩버터와 색깔이 비슷해 의심 없이 꺼내 먹은 것이었다.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웃느라 정신없었다. 분주한 아침에 내 ...
요즘 내가 푹 빠진 취미는 뜨개질이다. 매일 틈만 나면 자리 잡고 앉아서 한 코 한 코 실을 떠내려간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함께 뜨기도 하고 관련 영상을 보며 혼자 사부작거리기도 한다. 어느새 내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버린 뜨개질이 난 갈수록 좋아진다. 내가 뜨개질을 시작한 건 3년 전쯤이다. 친구가 목도리를 뜨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움 그...
학창 시절, 매일 아침마다 우리 집엔 커피 향이 은은히 퍼졌다. 나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난 엄마가 탄 커피 향이었다. 엄마는 블랙커피 한 포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붓고 숟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저어놓은 뒤 어디론가 분주히 사라지곤 하셨다. 그래서 식탁 위엔 언제나 미지근한 커피잔만 덩그러니 남았고 엄마가 그 커피를 끝까지 마시는 걸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그저 ...
나는 계절마다 한 번씩 만나는 사람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딱 한 번씩 만난다. 두 번도 아니다. 한 계절에 한 번. 이 만남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1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나는 당뇨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온다. 우리의 만남이 석 달에 한 번이다 보니 계절이 바뀌는 주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약국...
나는 10년 차 장롱면허 소유자다. 운전면허 취득 후 얼마 전까지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이사 가게 되면서 운전 연수를 신청했다. 대중교통이 서울만큼 발달한 지역이 아니어서 자차 이용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운전 연수 선생님은 친절하신 분이었다. “잘하고 있어요” “소질이 있네요” 같은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아주셨다....
요즘은 카드 소비가 일상화된 시대지만 나는 현금으로 물건을 살 때가 많다. 지폐를 쓰면 돈의 귀중함이 느껴지고, 동전이 쌓이면 은행으로 가져가 모인 금액만큼 계좌 이체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얼마 전 동전을 입금하고 오는 길에 특별한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오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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