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고 돌아서면 치울 게 또 생긴다고 엄마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하셨다. 잔잔한 호수 같던 집에 “이 집은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어?”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면 나와 언니는 바짝 긴장한 채 각자의 방으로 가 주섬주섬 책상 정리를 했다. 난 그래도 눈치껏 잘 치웠던 것 같은데 아들 녀석은 잔소리를 해도 왜 자꾸 어지르는 걸까? 심호흡을 한 번 더 하고 차...
같은 동네 사람들 사이엔 자신들끼리만 공유하는 ‘동네 취향’이란 게 따로 있는 걸까? 아니면, 취향이 비슷해 같은 동네에 모여 사는 걸까?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문을 연 독립서점 ‘옥수서재’엔 책 읽기와 토론을 즐기는 비슷한 취향의 주민들이 자주 모인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그들은 옥수서재가 ‘책 읽고, 얘기 나누기 가장 좋은 ...
[영화감독 백승기] 2012년 총제작비 100만 원짜리 초저예산 장편영화 숫호구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던 백승기(39) 감독은 요즘 부쩍 마음이 심란하다. 지난 3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 대작 인터스텔라를 패러디한 인천스텔라의 개봉 성적표 때문에 생긴 조바심이다. “글쎄요.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영화 몇 편을 더 만든다는 게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지금껏 표방해온 ‘C급 무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상업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투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죽기 전에 모든 장르의 영화를 다 만들어보는 게 인생 목표인 백 감독에게...
하얀 물결의 매화꽃이 봄을 알렸다면, 꽃이 진 자리에 달린 초록빛 매실은 여름이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여름, 전남 순천 구랑실농원의 매실도 뜨거운 태양 아래 알알이 영글어가는 중이다. 각각의 계절을 맞이하는 풍경이 있다. 찬바람이 돌면 겨우내 먹을 김장 준비에 분주해지고,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면 봄기운 전해줄 봄나물을 집어들게 된다. 여름이 시작되는 ...
“정말 이걸 다 가져간다고?” 일 년에 한 번 고향 나들이를 가는 가사도우미 ‘린’의 여행 가방은 흡사 이삿짐을 방불케 했다. 린의 고향은 필리핀 남쪽에 있는 민다나오(Mindanao) 섬, 거기서도 외딴 곳인 산타까타리나(sata catalina)라는 작은 마을이다. 배를 타고 가야 해서 왕복 차비만 해도 한 달 월급을 훌쩍 넘지만 그녀는 아들의 생일에 맞춰 한 해도 거르...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났다. 나의 반년은 안녕했는가 하는 생각과 앞으로 남은 반년에 대한 걱정이 나를 덮쳐왔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일 년에 한 번은 일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이맘때쯤 꼭 겪고 지나가는 열병 같은 일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이 또한 지나가겠지 싶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서울 딜쿠샤] 서울성곽 언덕길에 자리한 붉은 벽돌집인 딜쿠샤가 복원을 마치고 공개되었다. 이 집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무척 많았나 보다. 개관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내부 관람 예약이 치열하다. 딜쿠샤에서 유년기를 보낸 브루스 테일러라는 미국인이 등장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2018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메리 테일러 가족의 기증유물 전시회에...
여행이라 하면 보통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상안 주택’에서는 집안을 거니는 일이 곧 여행이 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변하고, 공간마다 각기 다른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웃음 많은 부부에겐 집이 최고의 여행지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꿈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새로운 식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식구는 나와 평생을 함...
덕수궁 돌담길전광수커피하우스 정동점 ••• 세실극장 ••• 영국대사관 후문 “오늘 점심 어때? 한 시간 뒤 덕수궁 앞에서 보자.” “그래, 신발은?” “운동화!” “좋아!” 수십 년 지기의 친구와는 약속을 성의 있게 잡을 필요가 없다. 그냥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되고, 사정이 맞지 않아 못 만나더라도 서운하거나 눈치 볼일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렇게 만나는 아주 오랜...
물개 한 마리가 김이 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 물개는 여유롭게 커피 타임을 즐기다가도 어느새 지구 반대편으로 생두를 조달하고, 테이블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홈 바리스타가 되기도 한다. 공사다망한 이 생명체는 2014년 창업한 ‘프릳츠 커피 컴퍼니(FRITZ COFFEE COMPANY, 이하 프릳츠)’의 심벌 캐릭터다. 질 좋은 커피를 만들고 직접 빵을 구워내는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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