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오래 전부터 남북 간의 지역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왔다. 공업의 발달로 부유해진 북부 지역에서는 가난한 남부를 거지라고 깔보고,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남부 지역에서는 북부 사람들을 이기적인 돼지라고 부르며 반목이 이어졌다. 이렇게 서로 대립하던 이탈리아인들을 그나마 같은 국민이라는 공감대로 묶어준 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널리 퍼...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 눈이 떠질 때가 있다. 대부분 6시 언저리인데 다시 깊은 잠을 못 이룰 것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물 한잔을 마신 뒤 거실 소파에 앉는다. 밖은 아직 어둡고 집안은 조용해 책 읽기 제격인 시간이다. 오늘 아침에도 6시에 눈이 떠져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펼쳤다. 이 책에는 가장 먼저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 역시 중학교 때부터...
브론테살롱은 ‘빨간콩’이란 이름의 독립출판사이자 서울 노원구 수락산 아랫마을에 문을 연 동네책방이다. 동네 상가 한쪽 10평 남짓한 크기의 이곳은 책과 사람이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며 보낸 25년의 편집자 생활을 접고 독립출판을 시작한 지 1년. 수락산으로 오르는 디자인거리 끝자락에 작은 동네책방을 꾸리면서 나는 ‘책방지기’라는 새...
“군복무 중인 아들이 제대하면 본격적으로 대장간 일을 권해볼 생각이에요. 단순히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욕심에서가 아니라 제 경험으론 이만큼 괜찮은 직업도 없더라고요.” 대장장이 가업을 3대째 잇고 있는 류성배(53) 씨의 자신감 때문인지 냉기 가득하던 대장간에 알 수 없는 온기가 퍼졌다. 대장간 사업의 미래를 낙관한다는 주인의 말에 더 신명이 나는 걸까? 논산시 연산면 연산...
붉다 못해 검붉다. 경남 합천 권두보 농부의 딸기가 알알이 맺혀 검붉게 익어간다. 자연 그대로의 방식에 오직 농부의 땀과 정성만을 보탠 100% 유기농 딸기다. 어릴 적 시골집 뒷마당에는 딸기 넝쿨이 자라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동생과 함께 새파란 딸기가 빨리 익기를 기다리며 뒷마당을 들락날락거리곤 했다. 아직은 기다림이 어려웠을 어린 나이,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면 딸기...
남편의 발령으로 갑작스럽게 캐나다 밴쿠버행이 결정되었다. 팬데믹 사태로 일상이 멈춘 캐나다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13살 아이는 6개월 만에 간신히 입학허가를 받았다. 아이는 첫 등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밴쿠버 학교에는 한국 학생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는데, 아이 반에는 동양인조차 없었던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 두통까지 호소하는 아이를 위해 긴급 ...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스며드는 봄기운에 차 한 잔이 생각났다. 나의 일상엔 언제나 차가 함께한다. 오늘 같은 날은 무슨 차가 좋을까? 차 서랍장 안에는 한국차의 잎차와 대용차, 중국차, 홍차 등 다양한 차들이 구분되어 들어있는데, 차를 찬찬히 고르다 보면 계절별로 마시는 차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추운 겨울에는 바디감이 좋고, 차맛에 집중된...
[익산 춘포리 정미공장] 작년 6월에 나는 만경강을 걸어서 답사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실천에 옮겼다. 전북 평야지대의 근대유산들을 곰곰 살피다가 문득 강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소는 강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완성된다. 특히, 농촌마을은 아주 먼 시절부터 강과 천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아왔으니 길과 건물만큼 물길과도 큰 연관을 맺고 있을 터였다. 두 번에 걸쳐 ...
강원도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도문동. 부부가 집짓길 원했던 그 땅에서 외면하기 힘든 세월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100년 된 집에 새 숨결을 불어넣게 되었다. 우리는 부부 건축가이다. 집을 짓는 일도 대부분 부부가 함께 찾아와 어떤 땅에 자신들이 꾸고 있는 꿈을 펼쳐달라고 의뢰하면서 시작되는데, 우리 부부와 세상 사는 이야기나 새 집에서 펼쳐질 새로운 생활에 대한...
고모산성 성곽길(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진남문•••성벽길•••고모산성•••토끼비리 성곽마다 다르긴 하지만 성곽길에는 특유의 결연함이 있다. 촘촘히 올라간 돌 마디마다 조금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강이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엄도 근사하다. 다만 활과 포를 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나른함과 그 결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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