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도동 별담마을은 슬럼화가 진행돼 황폐해진 마을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선한 마음이 모여 있는 곳이다. 최근 3년 동안 기업, 대학 동아리, 청소년 등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허름한 옹벽들을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채웠다. 코로나19로 단체 봉사가 불가해지면서 더 이상 벽화를 그릴 수 없게 되나 싶었지만 ‘픽셀모아꿈틀’ 프로젝트 덕분에 낡고 좁은 골목길이 계속 ...
이달에 소개할 샘터 과월호 글은 2001년 1월호 ‘행복수첩’ 코너에 실렸던 최병화 님의 이야기입니다. iTV PD이자 비디오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최병화 님은 취재 차 방문했던 원경학교에서 1년간 머물며 학생들과 같이 생활한 이야기를 《교실 이데아》라는 책에 담아낸 바 있습니다. “발가락 아찌, 안녕?”18세 소녀 정화는 날 항상 그렇게 불렀다. 발가락 양말을 신은 탓이다...
그림·지은아 가수 김창완의 시간은 노랫말처럼 정말이지 ‘모든 것을 태어나게도 사라지게도 빛나게도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다. 잠시 내 추억의 태엽도 그가 걸어온 음의 발자취를 따라 80년대 초반으로 감아본다. “산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유치원 시절 ‘산울림’의 산할아버지를 율동까지 곁들이며 열심히 따라 부르는 꼬마가 있었다. 그 꼬마는 산울림이 어린이들의 친구인 요정 같은 할아버지일 거라 생각했다. ‘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머리’라는 가사의 TV인형극 주제가 ...
정운창은 18세기 후반 바둑계를 주름잡던 최고 기사였다. 노력형 천재였던 정운창은 사촌형에게 바둑을 배워 짧은 기간에 일취월장, 곧바로 청출어람의 단계에 이르렀다. 사촌 형은 내기 바둑, 즉 지금으로 치면 프로에 진출하기를 권했지만 정운창은 거절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바둑에만 몰두하던 정운창이 세상으로 나온 건 십 년이 더...
야구규칙 7조 9항(g) 주자가 병살을 하지 못하도록 명백한 고의로 타구를 방해하거나 타구를 처리하고 있는 야수를 방해하였다고 심판원이 판단했을 때 심판원은 방해한 주자에게 아웃을 선고하고 타자주자에게도 동료선수의 방해에 의하여 아웃을 선고한다. 이 경우 볼 데드가 되어 다른 주자는 진루도 득점도 할 수 없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투수 송승준은 경남고를 졸업한 뒤 바로...
홍콩으로 이사를 온 첫 일요일, 시내 구경을 나간 우리 가족은 믿지 못할 풍경과 마주쳤다. 공원, 육교, 인도를 불문하고 앉을 자리만 있으면 어디든 꽉꽉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간식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낮잠까지 자는 사람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휴일을 즐기고 있는 ‘헬퍼’들이었다. 홍콩은 싱가포르, ...
“눈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외안(外眼)과 내안(內眼)이 그것이다. 외안은 외부의 사물을 관찰하고 내안은 이치를 살피는데, 어떤 사물이든 이치가 없는 것은 없으니, 외안이 어두워 침침해졌다면 반드시 내안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쓰임이 전적으로 내안에 달려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밖에 보이는 것에 홀려 마음이 옮겨가게 된다면 외안이 도리어 내안을 해...
1930년대의 맥주 광고. 바깥출입이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여느 해보다 더 잦은 음주를 경험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로서는 ‘혼술’을 부쩍 즐기게 되었다. 체질 탓에 오랜 세월 자발적으로는 맥주잔을 든 적이 별로 없던 내가 올해는 여러 주종 중 맥주를 제일 자주 찾게 된 건 친숙함 때문이다. 맥주는 한국인이 가장 애호하는 술이 된지...
그림·김희현 나의 하루는 친언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시작된다. 간단히 오픈 준비를 돕고 나면 내 몫의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줄곧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했지만 날이 추워진 후부터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산미가 강하지 않고 고소한 맛이 딱 내 취향에 딱 맞는다. 음료를 제조하는 테이블 위에 그날 읽을 책과 커피가 담긴 따끈한 머그잔을 내려놓...
01 삼 남매 아빠의 새로운 도전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코로나야 없어져라이다. 제목이 조금 유치하다고? 하지만 이 노래는 내가 힘들 때 큰 위로가 되어준 소중한 음악이다. 내 아이들이 아빠를 위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노래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세 아이가 합심해 노래를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까지 한 건 아빠에게 갑작스레 닥친 시련 때문이었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 난 10년 넘게 다닌 회사로부터 거짓말처럼 권고사직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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