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친구 P와 함께 담양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방송작가인 P는 떠나기 전부터 “이번에는 정말 휴가답게 보낼거야!” 하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갑자기 방송 일정이 바뀌면서 담당 PD가 오매불망 내레이션 더빙 대본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휴가지에서도 일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담양에 가면 꼭 가보고 싶던 곳에 넓은 카페가 있다던 얘기를 떠올린 나는 P를 그곳으로 안...
그림·용소라 ○ 파랑새의 희망수기‘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없이 겪은 우여곡절, 기가 막힌 인연 등 우리 인생이 바로 한 편의 소설이고, 드라마입니다. ‘파랑새의 희망수기’에서는 2020년 샘터상 생활수기 부문 최종심에 올랐던 원고를 필자 동의 아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양 옆으로 갈라지며 서서히 길이 열렸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찰나의 시...
바이러스와 비. 올 여름은 이 두 단어에 갇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에서 생겨난 미생물들이 대륙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내가 사는 동네 커피숍까지 침투해왔다. 막연하고 희미하던 공포가 구체적인 수치와 불길한 예측을 등에 업은 채 얇은 마스크 앞까지 바짝 쫓아왔다. 사람들은 마스크 뒤로 숨을 가렸다. 어느 먼 곳의 대기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공기층은 바람을...
‘튼튼이:처음에는 낯가리지만 친해지면 애교쟁이’ ‘총총이:순한 수다쟁이’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사설 유기견보호소 ‘아지네마을’ 견사 앞에는 각각 팻말이 하나씩 걸려 있다. 이곳에는 이처럼 애교쟁이, 수다쟁이 유기견 180여 마리가 지내고 있다. 이중 최고참은 ‘업이’로 아지네마을 박정수(74) 소장이 10여년 전 구조한 시베리안 허스키다. 당시 남양주에 살던 박 소장은 산책...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 동안 샘터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던 정겨운 독자 투고 글을 매달 한 편씩 소개합니다. 지면에 다시 소개되는 글은 가능한 당시의 한글맞춤법과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1984년 10월호 ‘샘터 가족실’ 코너에 실렸던 독자 이명숙 님의 글입니다. 멋모르고 쫓아다닌 신입생 한 학기도 지나고 기나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엄마에게 궁한 소리 하며 타내...
‘높은 누각과 층층 정자가 담장을 잇대어 늘어섰고, 조공 배와 장삿배가 줄줄이 이어지고, 말과 소가 오가고, 오리와 해오라기가 헤엄을 즐긴다.’ 19세기 여인 김금원(1817~미상)이 묘사한 용산 풍경을 보면 지금과는 아예 다른 동네처럼 느껴진다. 김금원이 용산 풍경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었던 건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삼호정(三湖亭)에 살았기 때문이다. 삼호정은 지상 낙원이었...
야구규칙 4조 15항 어느 팀이든 다음 사항에 해당될 때는 몰수경기로 하여 상대팀에 승리를 줄 수 있다. (b) 경기를 지연시키거나 단축시키기 위하여 명백히 술책을 썼을 경우 야구는 원래 낮 경기였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색 잔디 위에서 펼치는 것이 진짜 야구 경기라고 여겨졌다. 야간 경기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기술의 발전 덕분이었다. 야구장에 조명이 설치되고, ...
내가 사는 곳은 폴란드 바르샤바 남동쪽에 위치한 빌라누프(Wilanow) 궁전 옆 주택가이다. 빌라누프 궁전은 전쟁의 상흔으로 많은 것이 유실된 바르샤바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백년간 남아있는 왕실궁전으로, 날씨가 좋은 가을이면 소풍삼아 오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고궁이 있어 관광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식당과 작은 상점들이 옹...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그 앞 정원에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으로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외람되오나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을 기록한 것입니까?”“옛 성인의 말씀이다.”“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이미 돌아가셨다.”“그렇다면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환공이 노해서 말했다.“과인이 책을...
접속이란 영화가 있다. 1997년 개봉작인데 ‘Contact’라 덧붙인 영문제목이 인상적이다. PC통신만으로 관계 맺는 영화 속 두 남녀는 만나고자 하나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서 비대면 접촉을 지속해간다. 전화선으로 연결된 컴퓨터 통신망을 활용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채팅’이라는 이름의 교신 형태였다. 1990년대 후반은 경제의 격동기인 동시에 대중문화의 폭발기이기도 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