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김희현 아이가 며칠 전부터 가자고 조르던 곤충박물관에 다녀오느라 어제는 책방 문을 열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오늘 책방에 나왔더니 써야 할 원고가 한 가득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요일인 만큼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옆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노는 방법 중의 하나는 긴 호흡으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럴 때면 책방에 손님이 없어도 마음이 느긋해진다. 날 위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생 선배’의 조언이 뜻밖의 용기와 지혜를 주기도 합니다. 안 기사님의 매서운 충고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죠. 제발 적극적으로 좀 배워요.” 20대 초반, 같은 회사에 다녔던 안 기사님의 매서운 질책은 지금껏 내게 좋은 약이 되어준다. 그때는...
조향사 김태형은 두 얼굴을 가진 ‘지킬앤하이드’ 같다. 영감을 떠올릴 때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 조향 작업에 착수할 때는 치밀한 과학자로 변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가 아니라 그때로 ‘돌아간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어느 한 순간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릴 수 있는 사람 말이...
그림· 동그란씨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는데, 경찰이 최류탄과 고무탄을 썼대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한 흑인남성이 사망한 사건 때문에 미국 전역이 시끄럽던 때, 잘 준비를 마친 내게 아내가 뉴스 속보를 전해주었다. 아내는 경찰의 과잉 진압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진촬영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며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미륵은 언제 오시나이미 다녀가셨나별이 명멸하듯 예언자는 떠났지만백제의 푸른 하늘은내가 받들고 있으리라나를 중심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진다왕조를 지우기 전에 먼저 나를 지우고 가라역사의 시작과 끝은 여기서 비롯되나니굳건한 존재를 두고멸망을 논하지 말라하늘에 고하고 하늘에 묻는다면이녁이 곧 부처임을깨달을 날 있으리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심야 상담소 밤에만 문을 여는 마음 상담소가타카미 데쓰야 지음, 황국영 옮김 서해문집 / 13,500원 일본 오사카 번화가인 미나미 지역의 한 낡은 건물에 둥지를 튼 ‘아울(올빼미) 클리닉’은 특이하게도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만 운영되는 병원이다.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낮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이들을 위해 밤에만 문을 여는 이곳에서 정신과 전문의 가타...
그림·권혁일 첫 휴가를 나온 건 입대한 지 넉 달 반쯤 지났을 때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너무 당연하게 누리던 그 알싸한 공기를 다시 맡게 된다고 생각하니 철조망 밖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에 자유의 날개가 돋는 것 같았다. 휴가 며칠 전부터 얼룩무늬 수첩에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만 적기에도 종이가 부족했다. 가족과 식사하기, 영화 보기, 컴퓨터 게임...
어린 시절 고향 장터 한 구석에 대장간이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뻘뻘 땀을 흘리며 달궈진 쇠를 힘껏 내리치던 대장장이가 생각난다. 조수인 듯 보이는 사내는 불이 꺼질세라 연신 풀무질을 해댔다. 풀무질을 하는 자리엔 가끔은 아낙이 앉아 있었고, 어린 사내아이가 나와 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날을 세우는 사람은 바뀌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이었다. 사내는 시뻘겋게 ...
[서울 평창동 박종화 고택] 1920~3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 중에는 역사소설이라는 거대한 숲으로 들어간 작가들이 많다. 현실의 나아갈 방향을 찾을 때 역사와 고전을 들추게 되듯이,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절에는 더더욱 민족의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경성 청년 구보로 각인된 모던보이 박태원이 대표적이다. 조선의 고현학자(考現學者, 고고학...
디자인 회사를 창업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새로운 경력직 에디터를 뽑는 자리에 세 명의 최종 면접자가 남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자였는데 그중 한 명은 기혼자였다. “결혼한 지 1년 정도 되었어요. 아기는 여건상 3년 정도 후에 가지지 않을까 싶어요.” 묻지 않은 질문에 관해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포트폴리오, 서글서글한 태도의 소유자였지만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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