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 동안 샘터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던 정겨운 독자 투고 글을 매달 한 편씩 소개합니다. 지면에 다시 소개되는 글은 가능한 당시의 한글맞춤법과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1994년 9월호 ‘샘터 가족실’ 코너에 실렸던 독자 최양섭 님의 글입니다. 이 이야기는 20여 년 전 우리 마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내 고향은 강원도 태백의 깊은 산골이다....
그림·지은아 구절초가 피려면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구절초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면 하나둘 씩 피어나 벼가 익을 무렵이면 산 중턱이나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왕성하게 자라난다. 소박하고 청초한 데다 약성도 좋아 한방에서 냉증이나 염증 치료약으로도 쓰는 여러해살이 꽃이다. 나는 항상 코끝에서 구절초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왜 그런지 애써...
유몽인과 이정구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유몽인(1559~1623)은 북인, 이정구(1564~1635)는 서인이었다. 유몽인은 성격이 직선적이고 강직했던 반면 이정구는 물 흐르듯 유연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북인 정권이던 광해군 시절에 북인 유몽인이 오히려 온갖 고난을 겪었던 데 비해 서인 이정구가 정치 일선에서 끝까지 버텨냈던 한 가지 이유이겠다. 각자 처지는...
야구규칙 8조 1항(f) 투수는 투수판을 밟을 때 투구할 손의 반대쪽 손에 글러브를 착용함으로써 주심, 타자, 주자에게 어느 손으로 투구할 것인지를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투수는 동일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투구하는 손을 변경할 수 없다. (중략) 투수가 이닝 도중 투구하는 손을 변경하는 경우 투수는 연습투구를 할 수 없으며 글러브를 교체할 수 없다. 단, 양손 글러브는 허...
유럽 서쪽 끝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 제주도에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면, 아일랜드에는 비와 바람이 많고 소와 양이 많고 또 하나, 뮤지션이 많다. 10년 전 처음 아일랜드에 왔을 때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남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유명하지도 않고 전업 음악인도 아니지만 노래와 연주 실력은 프로급인 사람들이...
여름 한낮의 버스정류장. 20대 여성이 마스크로 반쯤 덮은 얼굴에 휴대선풍기를 대고 서있다. 요즘 손거울만큼이나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명 ‘손풍기’다. 뜬금없이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1923년 이맘 때, 26세의 소설가 염상섭이 한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의 도입부 장면이 떠오른다. ‘남자는 대화 도중 부채를 들어 여자에게 부쳐준다. 직각 방향으로 앉은 여자는 부채를...
그림·김희현 얼마 전 내 다섯 번째 책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 출간됐다. 원고는 퇴사하기 전에 회사 다니며 틈틈이 써놨던 건데 이래저래 출간이 늦어졌다. 그 사이에 퇴사하고 서점도 차리는 등 180도 변한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신경을 못 쓰다가 뒤늦게 분발해서 마지막 교정을 보던 날이었다. 난 뭐든지 손에 쥐고 읽는 걸 좋아해서 웬만하면 이메일도 중요...
‘화과자의 첫맛은 눈으로, 끝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다. 아시아디저트 연구가 서지현의 일상에 비춰보면 이 문장은 ‘삶의 첫맛은 눈으로, 끝맛은 마음으로 즐긴다’로 대체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앙증맞은 화과자를 매일 만드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울까?’ 하하 호호 웃다보니 어느덧 모양을 갖춰가는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보고 스친 생각이다. 서울 연희동에 위...
그림· 동그란씨 시각장애인들은 자기 앞에 나타난 장애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항상 다니던 길에 전에 없던 물체가 놓여있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공사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다 보니 새로운 장애물이 생기지 않았는지 늘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를 능숙하게 사용하거나 잘 훈련된 안내견과 다니다 보면 이런 장애물이나 상황 ...
ⓒ 손묵광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허위허위 설악 하고도 소청봉 올랐으니암자만 보지 말고 석탑도 보고 가자구름은 태산을 품고 산은 세상 품었는데옛일 다 잊었다 하나 왕조마저 잊었으랴거룩한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곳에풍진에 마모된 역사 고려 숨결 깃들다 허위허위 소청봉 아래 해발 1244m 높이의 봉정암에 오른다. 설악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암자 주위에는 용의 어금니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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