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레코드를 타고 흐르는 폭스 트로트.’ 1930년 2월, 막 21세가 된 신예작가 박태원이 신문에 연재한 단편소설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폭스 트로트(fox-trot)란 빠르게 추는 춤곡을 말한다. 유럽에서 대유행한 뒤 일본을 거쳐 수입되어 서울의 유흥가를 후끈 달구고 있었던, 요즘 식으로 말하면 최신 댄스뮤직이다. 이 최신 서양곡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알게 모르...
그림·김희현 지금 막 모 화장품 회사 홈페이지의 Q&A 게시판에 글을 하나 남겼다. 작년부터 거의 매일 사용하는 헤어퍼퓸을 다 써서 추가 구매하고 싶은데 계속 품절 딱지가 붙어있어 언제 구매가 가능한지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성두피여서 날마다 머리를 감는데 아침에 감고 나와도 몇 시간만 지나면 샴푸향이 다 날아간다. 두피가 건강하지 못한 터라 향이 강한 샴푸를 쓰지 못하...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 ‘잘 나가는’ 홈인테리어 디자이너 제이쓴의 직업관을 듣다 보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명언이 떠올랐다.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집은 물론 삶을 가꾸는 그의 중요한 노하우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소리에 맞춰 변하는 제이쓴(35, 본명 연제승)의 표정이 유난히 변화무쌍했다. ...
그림· 동그란씨 ‘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모든 좋은 것들, 즐거운 일들, 편한 것들엔 언젠가 끝이 온다는 영어 속담이다. 점자(點字)를 주로 사용하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나 또한 이 말에 깊이 공감할 때가 많다. 나는 지금도 점자를 사용하는 게 편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이 글을 읽어주는데 왜 굳이 점자를 배우느냐고 반문하는 ...
무례한 세상에 대한유쾌한 문제 제기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악셀 하케 지음 /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15,000원 하인리히 힘러(1900~1945)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와 게슈타포의 책임자이며 유대인 대학살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사랑하는 딸의 학급 문집에 학부모 자격으로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적어 보냈다. “언제나 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군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훈련병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의무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해야 했다. 토요일 저녁쯤 되면, 내일은 어느 종교로 갈 것인가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했다. 눈곱만큼의 신앙심이라도 있다면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장병들은 종교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어릴 때 친구 따라 잠깐 다녀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종교적 갈등...
찌는 듯한 더위를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으로 빙수만한 것이 없다. 청량음료나 아이스크림, 아이스커피 같은 것도 있지만 맛으로나 시원함으로나 화려함으로나 빙수가 으뜸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단팥을 듬뿍 얹은 팥빙수 한 그릇과 마주 앉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빙수는 여름 음료의 대명사다. 6월 초, 아직은 덥지 않은 날씨. 제과점 윈도우에 나...
[서울 이화동 국민주택] 집은 과밀화된 도시에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이며 해결이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우리가 살고 있고, 주변에 보이는 모든 집들은 시대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모색한 결과물들이다. 집이 행복을 보장할 순 없지만 이 정도의 기반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약간의 희망은 갖게 한다. 집이 문제를 넘어 재건과 부흥의 신호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글로벌 커피 전문점에서 299잔의 커피가 주인 없이 버려졌다. 한 소비자가 사은품으로 주는 가방을 받기 위해 커피 300잔을 주문하고는 커피 1잔과 가방 17개만 챙긴 채 떠나버린 것. 이 마케팅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버려진 커피들을 보며 과연 그 브랜드의 대표는 미소 지을 수 있을까. 굿즈 마케팅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5년 11월에는...
이십 여 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직장 선배가 정년퇴임을 했다. 선배는 퇴직과 동시에 귀촌을 하여 여생을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시골에 아담한 집을 짓고 작은 텃밭을 가꾸며 여유를 누리는 전원생활은 직장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환상적인 노후의 삶이었다. 선배는 모두의 부러움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직장을 떠났다. 몇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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