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라오스에 도착해 짐을 푼 비엔티안(Vientiane) 공항 근처의 4성급 호텔은 우리나라 모텔 수준보다 나을 게 없었다. 객실 내 거울 앞에 놓인 모기약이 눈에 띄더니, 아니나 다를까 모기들의 공습으로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시내중심을 벗어나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 풍광을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아니, 차도에 웬 소들이 이렇게 많아?” 누렁 소...
[서울 성북동 채동선 가옥] 그 집에 갔던 건 2년 전 화창한 봄날이었다. 길거리에 쏟아진 햇살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문화재급 주택을 둘러보는 날이어서 카메라를 들고 성북동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에 대해선 일단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이런 집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예술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 오랫동안 닫혀 있던 집이...
박영자 할머니(69)는 한평생 불려온 이름보다 이제 ‘일산 할머니’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명이 바로 ‘일산 할머니’인 까닭이다. 전문 셰프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는 아니지만 그녀는 수십 년 동안 가족들을 먹여온 내공을 살려 정겨운 집밥 메뉴를 구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산 할머니 인사드려요. 오늘은 낙곱전골을 해보려...
바이러스 공포에 재택근무에 돌입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동안은 노트북을 들고 집 앞 카페로 향했으나 타인의 기침 소리 하나에도 모두가 짐짓 긴장하는 그 분위기가 불편해 이제는 집에서 진짜 재택근무를 한다. 휴식과 재생, 딴짓과 유희의 공간이어야 할 집에 불쑥 ‘근무’라는 단어가 침입한 것이다. 온종일 일하는 것 같은 기분,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함에 정확한 경계를 그을 방법...
그림·용소라 초등학교 3학년인 지훈이는 엄마가 없는 여름 내내 긴 옷을 입었어. 아빠한테 맞아 생긴 시커먼 멍을 숨겨야 했거든. “아빠가 미안해. 앞으로 진짜 술 안 마실게. 너한테 손찌검도 안 할 거고. 네 엄마 찾는 것도 관둘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비밀로 하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지훈이는 비밀을 지키느라 외로웠어. 하지만 아빠는 가을이 와도 전혀 달라지지 않...
그림·용소라 눈부신 5월의 햇살에도 눈물이 쏟아지는 날들이었다. 커다란 챙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집을 나설 때마다 아파트 20층 꼭대기에서 떨어져버릴까 생각하다가 발길을 멈추기도 했고, 어느 날은 정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다 주저앉기도 했다. 남편과 난 산다는 것에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남편은 술만 먹으면 죽지 못해 산다며 예전에 없던 주사를 부...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 동안 샘터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던 정겨운 독자 투고 글을 매달 한 편씩 소개합니다. 지면에 재수록되는 글은 가능한 당시의 한글맞춤법과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이번 호는 1978년 5월호 ‘샘터 가족실’ 코너에 실렸던 독자 이복순 님의 글입니다.작년 이맘때쯤의 일이라 기억된다. 그때도 지금처럼 노오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었으니까. 아르바이트를 ...
양혜왕이 말했다.“과인은 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을 하동으로 이주시키고 곡식을 지원했습니다.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마찬가지로 했습니다. 이웃 나라를 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웃 나라 백성은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은 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맹자가 대답했다.“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비유하겠...
영조와 정조는 각기 다른 이유로 《구운몽》을 사랑했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구운몽의 작자가 누구인지를 여러 차례 물었으며 ‘진정한 문장가의 솜씨’라는 표현으로 감탄을 드러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효심이 깊어 어머니를 위해 시경(詩經)에서 100편을 발췌한 책을 만들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신하들에게 시키는 게 미안했던지 정조는 구운몽을 언급하며 신하들을 독려했다. ...
야구규칙 6조 1항(a) 공격팀의 선수는 그 팀의 타순표에 적혀 있는 순서에 따라 쳐야 한다.(b) 제2이닝부터 각 이닝의 선두타자는 앞 이닝에서 정규로 타격을 끝낸 타자의 다음 타순에 이름이 올라 있는 타자여야 한다.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고 싶다면 야구와 축구 중 어느 종목을 시키는 게 좋을까. 재능 여부를 떠나, 아이가 박수와 환호성을 받을 가능성만 따지면 아무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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