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당포성. ⓒ 백홍기 나는 주로 알람소리로 시작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마감되는 하루 속에 산다. 그 사이의 시간은 낯선 곳에서 출발한 외국어를 모국어로 데려오는 번역 작업을 하느라 평평하게 지나간다. 이 수평의 시간은 대부분 시시하게 흘러가다가 수요일 점심 즈음 가벼운 당구 게임으로 슬쩍 궤도를 이탈하기도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
1933년 1월,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십 수 년 만에 보는 이상난동(異常暖冬)이라 했다. 겨울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사람들을 에워싼 것은 한파 대신 질병의 공포였다. 복 많이 받으라는 말 대신 밤새 안녕하셨냐가 새해인사였을 만큼 죽어나가는 이가 매일 늘어났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장티푸스와 천연두 같은 재래종 질환들도 만연했지만 유독 위협적인 질병은 유행성 감기와...
그림·김희현 책을 내고 작가로 데뷔한 뒤부터 출판편집자는 내게 두려운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특히 마감기한을 어겼을 때는 그 두려움이 배로 가중된다. 편집자의 독촉메시지가 무섭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질 리도 만무하니 어느 때는 정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다. 얼마 전에도 키보드에 올린 손이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를 때 ‘딩동’ 하고 울리는 알림소리에 마른침을 꿀꺽 삼...
영화 기생충에서 다송이 그림을 그린 실제 작가 정재훈은 2000년대 초 인기 래퍼 후니훈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색깔을 만들겠다는 래퍼 시절의 꿈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실현한 그는 랩으로 꿈꾸고 그림으로 이루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다. “침팬지를 형상화한 인간의 얼굴과 스키조프레니아존만 유념해주세요. 그 외에는 자유롭게 그려주시면 됩니다.” 요즘 한창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정재훈(40...
ⓒ 동그란씨 얼마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님과 전화로 얘기를 나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찍은 가족사진을 이제야 받아보셨다는 어머니는 “근데 넌 또 왜 눈을 감고 사진을 찍었니?” 하고 물으셨다. 다 같이 차려 입은 노란색 옷이 잘 어울리더란 말은 전화 끊기 몇 초전으로 미룬 채 어머니는 내게 타이르듯 다시 말씀하셨다. “사진 찍을 때는 꼭 눈을 뜨고 찍어라!” 1976년은 ...
대견사지 삼층석탑(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용리 비슬산/대구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42호) ⓒ 손묵광 [대견사지 삼층석탑] 대숲은 씻어라,귀마저 씻어라 하고바윗돌은 잊어라,깡그리 잊으라는데석탑은 그저빙그레 웃고만 계시네 듣고 싶지 않은 말 들은 날에 대견사지 찾아간다. 대숲에 들어 귀를 씻고 싶다. 돌로 손등을 찧어 그 아픔으로 잊고 싶다. 하지만 삶이 그리 간단하며,...
샘터와 함께 울고 웃었던 독자 여러분의 기억들이 모여 샘터가 걸어온 50년의 세월을 빛냅니다. 오랜 시간 샘터와 동행해온 애독자들의 정겨운 사연들을 소개합니다. 01잡지에 실려 온 반가운 안부 14년 전 남편이 입대를 앞둔 아들을 데리고 둘만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기 속초 동명항인데 승태하고 같이 왔어. 내일 올라갈게” 남편과 아들이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 의아해...
- 《샘터》 창간 시절을 돌아보며 ‘세월이 참 빠르구나!’ 이 말은 나이든 분이면 누구나 가끔씩 하는 탄식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예외가 아닙니다. 《샘터》 창간 50주년을 맞게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창간호 편집장으로서 그런 감회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돌이켜보니 1969년 연말이 가까울 무렵, 친하게 지내던 시인 신동문(辛東門) 선생이 잠깐 만나자는 연락을 해...
- 샘터 창간 50주년을 축하하며 창문이 있었던가? 열 살의 내가 누워 있던 시골병원 입원실은 온돌방이었다. 서울 병원으로 옮겨 B형간염이란 진단을 받기 전까지 의사는 독감이란 말만 반복했다. 결국은 집안을 휘청거리게 할 만큼 비싼 약을 쓰고 나서 완치되었지만 서울에서 간염이 낫고 몸이 건강해질 때까지의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직도 시골병원 온돌방의 느낌은 뚜렷하게 ...
문화교양지 최초 통권 602호 1970년 4월 창간한 샘터는 2020년 4월 현재까지 매달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50년 동안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낸 최장수 문화교양지의 누적 기록이다. 샘터 한 권을 만드는 데 200자 원고지 기준 평균 900매 이상의 원고가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602권의 샘터를 만들기 위해 총 50만 장 이상의 원고지가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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