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자생의원] 건물은 여러 개의 문을 갖고 있다. 문은 두 공간을 연결하고 이곳을 지나 저곳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때론 막다른 지점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집이 살아가는 사람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공간이 만들어낸 세계는 무한할 것이다. 하나의 문이 하나의 세계를 연다고 본다면, 여러 개의 방과 거실, 현관, 대문 등으로 이뤄진 우리의 집에도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
©라이프쉐어 “라이프 쉐어링(Life shering) 함께하실 분?” 2017년 2월, 최재원 씨가 올린 6명 정원의 라이프쉐어 모집글을 보고 단 하루만에 140여 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도대체 ‘라이프쉐어’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걸까. 서로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인생을 토론하는 라이프쉐어는 이미 유럽에서는 흔한 문화다. 10대 때부터 생애주기별...
중대장으로 근무할 때 입대 전의 나쁜 버릇이나 오래된 습관을 고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병사를 본 적이 있다. 어느 해 가을, 우리 중대에 배치되어 내려온 김 이병은 황당하게도 잠이 쏟아지면 아무 곳에서나 누워 자는 괴이한 버릇을 갖고 있었다. 녀석의 남다른 잠 욕심을 제일 먼저 눈치 챈 건 중대장인 나였다. 김 이병이 자대로 온 뒤 처음으로 나와 함께 새벽 순찰을 돌기로 했...
백석역 인근에서 열린 《브레이크》 23호 기념 전시. 대학생 편집팀은 관람객들에게 결과물을 소개하며 독자와 소통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연예인들의 화려한 화보가 실리는 상업 패션지 사이에서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색다른 패션잡지가 있다. 대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르데뷰》와 《브레이크》다. 유명한 스타의 화보 같은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값비싼 명품 옷으로 치장한 패션 ...
http://typojanchi.org 201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을 번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미 시상을 마친 여우주연상 봉투를 파쇄하지 않고 최우수작품상 발표자에게 잘못 전달했기 때문이다. 2차적으로 발표자가 이를 거르지 못한 것도 실수였지만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들은 봉투의 텍스트 레이아웃과 위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작은 글꼴이 ...
[충남 공주 원도심] 졸졸졸 흐르는 제민천 사이로 2층짜리 야트막한 건물들이 올망졸망 위치해있는 공주시 반죽동과 봉황동 일대. 고즈넉한 마을의 모습에서 과거 충청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요지(要地)였단 사실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여기가 그래도 극장이 3개나 있던 곳이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동시상영으로 봤던 영화가 아직도 기억나요.” 30여 년 전 주민 장일현(48)...
아일랜드 더블린에 막 도착했을 때 나를 맞아 준 이는 홈스테이 주인아저씨였다. 아저씨가 몰고온 현대자동차의 경차 외관에는 각종 홍보 문구가 잔뜩 붙어 있었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아저씨는 나에게 “발밑에 브레이크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 운전 연습 강사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그가 신기했다. 그러니까 그는 연습용 차량을 몰고 나온 것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칠판 가득 빼곡하게 동요 달맞이의 노랫말이 적혀 있다. 선생님은 천천히 가사를 불러주고 학생들은 일제히 책상에 머리를 숙인 채 받아쓰기를 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볼 수 있는 기초한글 교실 풍경이다. 이곳에는 60세부터 85세까지 한글을 모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어르신들이 낱글자부터 하나 하나 글씨를 익혀 가고 있다. 수업이 있는 날 오전 10시가 ...
가을이 깊으면 병이 도진다. 마음의 지층 어디선가 화석처럼 박힌 오랜 열망에 피가 돌기 시작하면서 뻣뻣하게 굳어버린 신경들이 꿈틀거린다. 망각의 지층과 지층 사이를 불어가는 바람 소리는 깊은 탄식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하고 어떤 약속에 대한 막연한 기대의 감탄사 같기도 하다. 아, 그 바람은 기온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신춘문예의 바람이다! 중학교 3학년 연합고사를...
그림·지은아 사람의 욕심은 참 끝이 없다. 학창 시절의 나는 내가 쓴 유치한 소설을 재밌게 읽으며 함께 웃어줄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건만 지금은 완성도 높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10대 시절의 나는 책을 사랑하는 문학 소녀였다. 국문학을 전공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속 미수처럼 출판업계나 잡지사에서 일하는 미래를 꿈꿨다. 오래 지나지 않아 취직에 더 유리할 것 같은 영문학을 택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글에 대한 애정만큼은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문학에 이토록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중학교 2학년 첫 국어시간,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인형처럼 작고 예쁜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곧은 정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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