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만촉광의 소대장 계급장을 달고 처음으로 발령받은 곳은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어느 전방부대였다. 겨울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 온도계가 깨질 정도라며 걱정해주는 동기도 있었지만 막상 내가 도착한 자대는 추위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밌고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대 배치 후 몇 개월이 지나 산꼭대기에 위치한 격오지 근무를 맡게 됐을 때의 일이...
회기동 골목길에서는 개성 있는 벽화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 학생들이 통학로로 자주 이용하는 ‘경희대로 4길’이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칙칙한 아스팔트 도로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더해졌고, 낙후된 벽화는 새롭게 페인트칠되었다. 화사한 민트색으로 칠한 가게 벽에는 ‘숨 프로젝트는 숨 틔우미들과 지역 ...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자리 잡은 한 스타벅스 매장. 언뜻 보기에는 기존 매장과 별다를 것 없지만 이곳에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25명 점원 모두 미국식 수화 ASL(American Sign Language)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사이닝 스토어(signing store, 수화 매장)라 불리는 이곳은 2018년 10월, 정식 오픈했다. 미국에서는 최초이지만 전 ...
‘무덤 위의 달동네’. 이 짧은 한 줄의 정보가 이번 여행의 유일한 준비물이었다. ‘묘지터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주민들은 무척 곤궁할 거야. 얼마나 무섭고 꺼림칙할까?’ 달동네를 향한 동정의 시선이 여행객의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산 남항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은 빈곤한 이들의 삶보다 더 무거운 뭇사람들의 선입견을 인 채 평생을 버티느라 몹시 ...
주로 예비 신부에게 행해지는 강황 예식이지만 이날은 특별하게 예비 신랑에게도 강황을 발라주며 축복을 빌었다. 인도에서 강황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도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카레이고 강황은 바로 카레의 주재료이다. 이곳에서 8년을 지내면서 인도 사람들의 식탁에서 노랑 색깔의 강황 가루가 빠진 요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인도 사람들은 어떤 음식이든 작은 티스푼 ...
날기를 두려워하던 어린 새가 나무 아저씨의 격려로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 《아기 새》. 이 책은 단순한 동화책이 아닌 시각 장애아를 위한 점자 촉각책이다. 한쪽 면엔 점자와 한글이, 또 다른 면엔 입체적인 그림이 있어 이야기에 나오는 사물의 질감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 2005년 바느질 작가 박귀선(46) 씨는 ‘일본만 해도 점자 촉각책이 5...
“역시 이걸 먹어야 해, 이걸!” 엄니가 소반에 하나 가득 잘 익은 무김치를 담아들고 들어오면서 행복해하신다. “환장하게 맛나게 생겼지? 입 안에 침이 확 도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급처방을 찾으신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초 김장을 하기 전 마당에 김장독을 하나 묻었다. 요즘은 시골에도 김치냉장고가 없는 집이 없...
그림·김보통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동안 전단을 돌린 적이 있다. 아버지 친구가 개업한 실내 낚시터의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일은 단순했다. 매일 아침 두껍게 옷을 껴입고 낚시터로 출근하면 그날 돌려야 할 전단 뭉치를 받았다. 몇 장인지는 모른다. 아버지 친구가 “이만큼은 돌릴 수 있겠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라고 말씀하신 뒤, 봉고차에 나를 싣고 그...
그림·지은아 라디오에서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신승훈이 1993년에 발표한 널 사랑하니까이다. 이 곡은 나를 고교시절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 같은 노래다. 애절한 음률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한 표정을 띤 여고생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운동장의 계단에 앉아 나와 이어폰을 나눠 낀 채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 친구 미선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앞뒤로 앉아 금세 단짝이 되었다. 신승훈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것이 공통점이었던 우리는 취향이 비...
그림·박지영 얼마 전 지상파TV 방송 3·1절 특집 다큐 촬영을 위해 모교인 군산제일고등학교와 군산영광여고에 가서 특강을 했다. 군산제일고는 1902년 전킨 선교사에 의해, 군산영광여고는 1903년 스트래퍼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유서 깊은 미션스쿨이다. 그중 군산제일고등학교는 호남에서 최초로 3·1운동과 태극기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선교본부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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