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한윤빈 소년과 소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살갗을 에며 지나갔다. 양손에 짐을 들고 금호강을 건너는 소녀의 손엔 장갑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 간 소년은 점점 작아지더니 모퉁이를 돌자 금세 가뭇없이 사라졌다. 바삐 걸었으나 소녀는 결국 소년과 같은 버스를 타지 못했다. “나는 책가방에 반찬 보따리까지 들어서 힘들어 죽겠는데, 저는 창피하다면서...
야구규칙 1조 1항. 야구는 펜스로 둘러싸인 경기장에서 감독이 지휘하는 9명의 선수로 구성된 두 팀이 한 명 이상의 심판원의 주재 아래 이 규칙에 따라 치르는 경기이다.2018 공식야구규칙 p.1 ‘야구는 인생과 닮았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 인생처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 언제나 잘할 수는 없다. 열 번 중 세 번의 기회만 ...
“나를 부드럽게 죽여줘, 너의 손길로 눈 감겨줘어차피 거부할 수조차 없어, 더는 도망갈 수조차 없어니가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서” 몇 년 전 출판사에 재직하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회사나 매출의 압박은 있는 법. 게다가 문자보단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늘면서 책을 알리고 파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다. 나도 출판사의 책들을 바깥에 알리는 일에 골몰하...
©동아일보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빈민들을 구제하고자 12월 21일부터 자선남비를 시내 곳곳에 걸어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동정을 구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한국에 처음 출현한 1928년, 신문은 이렇게 전했다. 냄비를 ‘남비’ 로 표기하고, 불우이웃 대신 ‘빈민’으로 표현했을 뿐 내용은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당시 전국 스무 곳에 설치되었던 자선냄비의 거점은 경성(京城...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남겼다. 욕망을 따라 사는 풍요로움보다는 가난할지언정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관중은 ‘백성은 곳간이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라는 말을 남겼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도덕과 윤리가 무색해진다는 뜻이다. ...
날씨는 우리 생활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날씨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에서 날씨에 의해 승패가 달라졌다.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이 동장군에 패해 몰락한 일화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나폴레옹은 천재적 전술과 탁월한 부하 관리로 순식간에 프러시아를 궤멸시키고 중부 유럽을 비롯하여 북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확고하게 지배...
공포소설이나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여덟 살 아이를 유인해서 목숨을 빼앗는가 하면, 또래 친구를 집단 폭행해서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지게 만든 십 대들의 이야기는 ‘공포와 충격’이었다. 게다가 살인 행위를 ‘사냥’이라 이름 붙이고, 피해 학생의 겉옷을 빼앗아서 입고 다녔다니 숨이 턱 막힌다. 대체 저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각종 매...
십 년 전 명절에 차례도 지내지 못할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다. 한 달 넘게 체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 바람에 음식도 거의 먹지 못했다. 먹는 걸 몹시 좋아하는 나였지만 약을 먹기 위해 죽만 서너 숟가락 겨우 떠먹었다. 이렇게 아프기 직전까지 몹시 바빴다. 오전에 연수원에서 강의를 하고 오후엔 사무실로 출근해 회사 일을 했다. 저녁에는 직장인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워...
그림·김희현 최근 친한 동료들이 하나둘 이직을 하는 바람에 종종 ‘혼밥’을 하곤 한다. 책 읽을 시간이 많이 필요한 나로선 독서하며 밥 먹는 점심시간이 나름 더 유용해졌다. 오늘도 갖고 나갈 책을 주섬주섬 찾으며 창밖을 보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보통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지갑은 손에 들고 나가는데 우산을 써야 하니 적당히 담을 것이 필요했다. ‘이럴 때 에코백만 한 게...
“시조는 형식에 갇혀 있는 문학이 아니라 형식을 통해 완성되는 시예요. 형식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새롭고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장르가 시조지요. 이런 ‘정형성 속의 가변성’이 지금껏 저를 시조에 매달리게 한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40년 넘게 지켜온 순애보적 사랑의 이유를 짐작케 하는 말이었다. 시조 형식에 대한 설익은 이해를 창작의 여지를 확장하는 미적 조건으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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