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작가의 상징이 원고지와 만년필이라니. 요즘 세상에 누가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쓰나. 요즘이라 하기에도 무색하다. 타자기를 거쳐 워드프로세서를 지나 컴퓨터, 이제는 숫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시대로, 작가들이 수기로 원고를 집필하지 아니한지 어림잡아 서른 해는 되었을 터다. 고백하자면, 나에겐 만년필에 대한 로망이 있다. 가지고 있는 만년필만도 대여섯 자...
한국에서 일하다 금의환향한 이주노동자의 성공스토리는 이제 꽤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나의 고국 캄보디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 주변에도 한국에서 번 돈으로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2014년, 나 또한 크나큰 포부를 안고 처음 한국 땅을 밟았...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기간 2025년 3월 2일까지장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피크닉문의 02-318-3233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풍경을 특별하게 담아내는 사진이 있다. 야구공을 던지는 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두 자녀의 손을 꼭 잡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린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전시에서 만난 작품들이 그랬다. 사진 속에 담긴 따스한 시선들을 볼 때면 일상적인 장면을 다정하게 보는 사진가가 궁금해진다. 우에다 쇼지는 일본의 대표 사진작가이자 연출 사진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 습작부터 유작까지 총 180여 점으로 구성된 대규모 회고전이다. 그가 흥미로운 이유는 거장임에도 나고 자란 소박한 시골에서 평생 검소하게 사진 작업...
외로워 그랬을까. 아침에 일어나면서 불현듯 ‘실존주의’란 단어가 떠올랐다. 내 뜻과 무관하게 내던져진 삶, 나에게 무관심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를 내던져야 하는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아침 식사를 끝내고 집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동네 도서관. 한겨울의 매서운 찬바람도 토요일엔 그나마 덜하다. 기분 좋을 만큼 서늘한 기운을 뺨으로 느끼며 짧게 산책을 마친 후 도서관 자료...
정동진 앞바다는 소란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균형미가 흐른다. 즐기는 바다가 아니라 바라보는 바다여서 그렇다. 파도의 자태가 고와서일까, 쪽빛이 눈부셔서일까. 여행자는 그저 수평선을 응시하기만 해도 마음이 트이고, 바다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틋하다.정동진과 잇닿은 동해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바다다. 자꾸 사람 곁으로 다가오려 하고 사람을 옆에 끌어 앉...
2018년을 기억한다. 고기를 몹시 좋아하는 여덟 명의 친구가 동시에 비건, 즉 동물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 선언을 한 해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같았다. 동물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저항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요즘, 그들 중 일곱 명은 다시 고기를 먹는다. 죄 많은 먹이사슬에 슬그머니 복귀한 친구들은 먼 산과 땅바닥을 교대로 바라보...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안사에게 안사, 새해가 되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나요? 저는 ‘낫 투 레이트(Not too late)’라는 이름의 낡은 수첩을 펼쳐 한 해의 소망을 적습니다. 매년 1월 1일에 행하는 저만의 의식이에요. 재작년에는 ‘알록달록해지기’라고, 작년에는 ‘애타도록 마음을 서둘지 말라’라고 적었죠. 새해 소망이라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여겨지나요? 저는 ...
지식이란 항상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쓸 만한 지식에 접근하고 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꽤 많은 조건이 필요해서였다. 심지어는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한 줌의 지식조차 내 삶과 영 동떨어진 듯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건 내가 나고 자란 환경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사회가 알아주는 그럴듯한 직업을 갖지도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아무리 ...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토끼 ‘모정이’를 새 가족으로 맞이한 박소정 씨. 모정이와 함께한 시간이 쌓이는 동안 그녀는 반려동물은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 /)( '오' )모정(만 1세, 암컷) 특징1. 간식을 주는 사람은 전부 착한 사람인 줄알고 졸졸 쫓아다닌다.2. 안고 쓰다듬어 주면 5분 안에 잠이 든다.동물을 소중히...
“선생님, 모자가 참 잘 어울리세요.” 내가 모자를 쓴 이래 자주 듣는 말이다. 잘 어울린다니까 기분은 좋은데, 요즘은 내가 시력을 잃어 모자 쓴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볼 길이 없으니 정말로 모자가 잘 어울려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건넨 인사말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듣기 좋은 말이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강연을 하다 보면 특히 모자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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